에브라임 사람들의 경우
·본문/삿 8:1-3, 12:1-6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앞부분을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쓸모없다고 말하지 않고 기꺼이 불러주는 것, 불러줄 때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와 주는 것은 얼마나 보기 좋은 관계입니까? 그러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오늘 묵상하는 두 본문은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에 왕이나 상비군이 없었습니다. 적이 침략하면 사사들이 사람들을 모아 적을 막았습니다. 8장은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울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12장은 <입다>가 암몬과 싸울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경우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에브라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 기드온과 입다에게 와서 <자신들을 전쟁에 불러주지 않은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이들의 항의에 대해 기드온과 입다는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제거한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언급하면서 에브라임 사람들의 공이 매우 크다고 칭찬해 주어 그들의 화가 풀리게 해 주었습니다. 반면에 입다는 항의하는 에브라임 사람들과 전쟁을 했는데, 이로 인해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에브라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들은 <말로만 생색을 내려할 뿐, 실제적 헌신은 하지 않은 채로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맞서고자 할 때, 그들은 기드온이 과연 자신들의 지도자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애초부터 승산 없는 전쟁에 참전할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의 승리가 확실하자 막판에 참전하여 미디안의 두 방백인 오렙과 스엡을 죽인 것입니다.(참고, 삿 7장 24-25절) 그들은 계산에 밝은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입다가 암몬과 싸울 때도 그랬습니다. 12장 2절에 의하면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가 불렀지만 오지 않았습니다. 출신이 천한 입다를 지도자로 인정하기도 싫었고(참고, 삿 11장 1-2절), 암몬과 싸워 이길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자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에게 몰려와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 것을 책망하면서 심지어 불살라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한 것입니다.
위의 두 전쟁 상황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이 보인 태도를 보면 나서서 헌신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끝까지 가만히 있지도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부터 나서지 않은 것은 비겁하거나 이길 것 같지 않은 전쟁에서 희생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고. 끄트머리에 나서서 항의한 것은 말로라도 체면치레를 하고, 전리품이라도 챙기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종종 말로만 생색을 내는 이들을 봅니다. 이들은 사태를 관망합니다. 불리하면 몸을 사립니다. 자신을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이면 슬며시 끼어듭니다. 그리고 불러주지 않았다고 섭섭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미지근한 태도는 주님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고린도전서 4장 20절). 우리는 처음부터 분명히 믿음의 태도로 나서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순수하게 헌신적인 태도로 임해야 합니다. 주님은 단순하고도 분명한 헌신자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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