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르침을 받음
히 5:12
십여 년 전 작고하신 장인께서는 장로님이셨습니다. 제가 알기론 신학공부도 하신 적이 있고, 목회자가 될 꿈을 가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장인께서는 그 성격이 매우 꼼꼼하시고 매사에 성실하셨습니다. 이런 성격은 늘 설교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메모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사위가 된 후 종종 만나 뵈면 목사 사위라서인지 교회 일들을 많이 말씀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장인께서 출석하시는 교회의 목사님에 대한 일종의 사랑스런 불평(?)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부임하신 지 일 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 다윗 이야기를 ****번이나 하셨어. 새벽에도, 수요일에도, 주일에도 다윗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셨어...”이젠 좀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님 편을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도 목사니까요.
장인어른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목사님이 설교 준비에 부실해서 늘 하시던 말씀을 반복한다면 그건 정말 문제입니다. 한 가지 음식만 공급하면 편식이 되고, 아이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설교자는 다양한 말씀을 감칠맛 나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인들은 비록 같은 말씀이라도 듣고 또 듣는 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찬송가 205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옵니다.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저 뵈지 않는 천국 주 예수 계신 곳 나 밝히 알아듣게 또 들려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이 찬송가는 <아라벨라 캐더린 행키, Arabella Catherine Hankey>의 시를 기초로 만든 것입니다. 행키는 열여덟 살부터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해서 오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여기 보면 <항상 듣던 말씀>을 또 들려 달라고 합니다. 이건 같은 말씀을 반복적으로 듣겠다는 이야기지요. 이 찬송가가 존재하는 한 설교자들이 소위 재탕(?)을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을 보면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흐른 세월로 보면 이미 선생님이 되었어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젖이나 먹어야 할 아기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너무 미숙해서 초보 단계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들었던 말씀이지만, 그 깊고 오묘한 뜻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체험하지도 못했으니, 다시 가르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러다보면 들었던 말씀을 또 듣게 되겠지요.
들은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것은 일견 짜증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사모하는 이의 음성이라면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더 이상 들을 수 없을까 염려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아버님 음성을 더 이상 못 듣게 될까 두렵습니다. 몇 일전에는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하시는 음성을 녹음했습니다. 뜨거운 사랑이 배어 있는 기도, 세상의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간절한 사랑의 기도를 녹음했습니다. 그 기도, 늘 겸손하라고 하시는 그 당부의 음성은 듣고 또 들어도 결코 질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하루 종일 들어도 싫지 않은 법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단 한 마디만 들어도 짜증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또 배우고,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는 일이 기쁨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듣고, 듣다보니 더 사랑하게 되는 은혜가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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