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
마 5:13-16
제가 속한 교단의 신임 총회장께서 2012년을 바라보면서 정한 주제는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런 주제를 정한 이유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한기총 사태로 대표되는 한국교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은 세간의 비판과 맞물리면서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는 교인이라면 누구나 오늘의 우리 모습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저희 교단이 정한 주제는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주제를 성도들에게 설명하는 데 매우 어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 주제 자체가 너무도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로서 설교하기 좋은 주제는 평소에 잘 다루지 않던 주제입니다. 본문도 평소에 잘 대하지 않던 본문이 훨씬 설교하기가 좋습니다. 생소하기 때문에 설명할 것도 많고, 새로운 메시지도 많아 설교를 구성하기 좋습니다. 교인들도 생소한 주제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입니다. 설교에 기대를 가집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대목은 너무 익숙하여 설교자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교인들은 “다 아는 이야기”로 치부하면서 설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쉽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다 아는 이야기이니까요. 설교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를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느낍니다. 아는 이야기는 진부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어떻게 삼십분씩 계속 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소금을 어떻게 생산하고 유통했는지, 품질 좋은 소금은 어떤 것인지, 소금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소금 관리는 어떻게 하면 잘 하는 것인지 등을 이야기합니다. 또 당시 사람들은 어떤 재료로 만든 등잔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기름은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집 안에 등불을 놓는 장소는 어떤 곳인지 등을 언급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삼십 분의 시간이 흐르고, 교인들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금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목사님은 어쩌면 그렇게 아는 것도 많은가”라고 감탄하면서 돌아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설교를 한 목사나 설교를 들은 교인들이나 소금과 빛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말하고 듣고 돌아갈 뿐입니다. 저도 그렇게 해 왔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이 주제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잘 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하지 못합니다. 정말 소금과 빛으로 살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거나 몸부림을 쳐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말만 할 뿐이고, 그렇게 하면서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여기고, 익숙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구본형 교수는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익숙한 것과 결별할 수 있을 때, 개혁과 변혁이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원리가 모든 부분에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소중한 것일수록 익숙한 게 좋습니다. 가족이 그렇고, 교회가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분은 우리 주님입니다. 주님과의 결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주님께 더 가까이 가야하고, 더 진지하게 임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성경의 난제들을 풀 수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대로 남겨두더라도, 이미 익숙한 주제에 더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주제야말로 우리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할 주제입니다. 익숙하지만 더 익숙해져야 할 주제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진지하게 대해야 할 주제입니다. 설명을 시도하지 말고 실천을 시도해야 할 주제입니다. 실천하려고 노력하지 못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해야 할 주제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이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주제입니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일 것입니다.
정말 우리 모두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자 울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렇게 되시길 빕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