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책 속에 존재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스테파니 말라르메의 말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책 속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런 정도의 말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목신의 오후’라는 유명한 시를 남긴 시인의 말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그의 명구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권 한권의 책은 하나의 세계이다”라고 말한 영국의 낭만파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말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책 속에는 세계가 있고, 세계는 책 속에 있다. 이러 말들은 책의 의미와 도서관의 의의를 말해주기도 한다. 흔히 문명의 보고(寶庫)로 일컬어지는 도서관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 정신적 유산, 그리고 문명의 자취를 지켜온 역사의 창고였다.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진흙에 글자를 쓴 토판(土版)이나, 로제타석과 같이 돌에 문자를 남긴 석판(石版)이 기록의 도구였지만, 에집트에서는 파피루스가 개발되었다.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주로 자랐던 갈대의 껍질을 벗겨 가로와 세로로 포개 압력을 가해 만드는 파피루스는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종이였던 셈이다. 파피루스는 습기에 약해 쉬 부서지는 약점이 있지만 신약의 사본들이 파피루스에 기록되었고, 고대 에집트인들의 삶의 모습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수되고 있는 것은 파피루스 덕분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해사본이나 나그 함마디문서,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사가 최근 공개한 ‘유다의 복음서’라는 것도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이었다.
파피루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양피지(羊皮紙)인데, 양이나 소의 가죽이 오늘의 종이를 대신한 것이다. 기원 1세기 당시 이미 양피지가 사용되었음을 신약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디모데 후서(4:13)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 쓰면서 두로아 가보의 집에 두고 온 “가죽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도록 부탁한 일이 있다. 그가 말하는 가죽 종이에 쓴 책이 다름아닌 양피지였던 것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그 재료가 무엇이었던가에 관계없이 수기본(手記本) 혹은 수서본(手書本)의 형태로 남아 있지만 이것은 중세까지의 역사와 문화의 소중한 기록물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 200마리의 가죽이 필요했다. 따라서 양피지는 상당한 고가에 거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서관의 역사는 고대 에집트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중세 수도원은 책을 보존하고 관리해 온 중요한 기구였다. 고대의 중요한 문서가 중세 수도원에서 발견된 것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수도사들을 위한 수도원에서조차 책들이 소실되거나 분실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심지어는 책을 훔쳐가는 이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은 한국에서나 통할 법한 이야기이다. 바르셀로나의 산 페도르(San Pedro) 수도원에서 발견된 ‘중세의 저주’(A Medieval Curse)로 알려진 책 도둑에 대한 저주문은 등골이 오싹하게 만든다.
“이 도서관에서 한권의 책이라도 훔친 놈은 뱀이 되어 찢겨지리라. 그런 놈은 수족이 마비되고, 그의 모든 가족들도 죽어 버리리라. 그런 놈은 고통 가운데 쇠잔해지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목 놓아 울게 하고, 물에 잠겨 사라질 때까지 고통 가운데 있게 되리라. 그런 놈에게는 죽지 않는 벌레가 있다는 표로 책벌레가 내장을 갉아 먹게 하고, 생을 마감할 때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하고, 영원토록 지옥의 불길이 그를 태우게 되리라.”
For him that stealeth a book from this library, let it change into a servant and rend him. Let him be struck by palsy and all his members blasted. Let him languish in pain, crying aloud for mercy, and let there be surcease for his agony until he sink to dissolution. Let book-worms gnaw his entrail in token of the worm that dieth not, and when at last he goeth to his final punishment let the flames of hell consume him, for ever and aye.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지닌 도서관은 미국의 국회도서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도서관에는 530마일, 곧 850Km에 달하는 책꽂이에 1억권이 넘는 책들이 꽂혀있다고 한다. 이 도서관에는 매일 7천권의 새로운 책들이 들어오고 있다. 또 여기에는 워드프로세서, 팩스, 복사기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들의 수합되고, 8억쪽이 넘는 웹문서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미국 국회도서관은 또 하나의 세계이며, 거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서관에서 부산에 사는 보잘 것 없는 나의 소품까지 보았다니 세계 곳곳의 책들이 수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어디를 가든 먼저 도서관 구경을 즐겨하지만 나는 아직 이 도서관을 구경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려 하는 것은 만용일 것이다.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나 많다는 현실에서 곧 좌절하게 될 것이다. 이곳 저곳이 우리의 눈길을 유혹할 것이고, 그 많은 책 중 한권을 선택해 차분히 책을 읽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저 책 구경으로도 족하다고 할까?
보유 장서에 있어서 하바드대학교의 와이드너 도서관도 우리들을 상심하게 한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Library: An Unquiet History)를 쓴 매튜 배틀스(Matthew Battles)는 이 도서관을 “천하무적의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하바드 졸업생이자 일생동안 서적 수집가로 살았던 와이드너(Harry Elkins Widener)는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다가 1912년 그 배의 침몰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되자 그의 어머니는 와이드너가 일생 동안 수집한 책들을 하바드대학교에 기증했다. 이것이 하바드대학교 와이드너 도서관의 기원이 된다. 10층에 이르는 이 도서관 건물에는 총 연장 길이 57마일, 곧 92Km에 달하는 책꽂이에는 460만권의 책이 뻬곡히 들어있다. 말이 460만권이지 그 양은 엄청나다. 근대 도서관 장서수에 대해 시샘이라도 하듯 세네카는 그의 ‘도덕에 관한 편지’(Epistulae Morales)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책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라고 말했다지만 와이드너는 그저 권수만 채우는 장서가가 아니었다. 그가 수집한 장서 중에는 진기한 책들, 희귀본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도서관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한국의 국회도서관 장서수는 60만권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의 유수한 도서관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라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문화의 보고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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