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땅에서 이룬 선교기적
1992년 9월 23일자 ‘국민 일보’에 게재된 ‘순교의 땅에서 이룬 선교기적’이라는 기사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사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1992년 6월 11일 와오라니 우림 지역의 외딴 마을 티네노에서는 감격적인 신약성경봉헌 예배가 드려졌다. 75명의 와오라니 인디안 기독교인과 수명의 성경 번역 선교사, 봉헌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온 손님들이 함께 한 이번 예배에서는 와오라니어로 번역된 신약성경을 와오라니 기독교 지도자가 잔잔히 읽어 내려갔다. 이번 예배에 참석한 와오라니 인디언 기독교인들 가운데 3명은 5명의 선교사 살해에 가담한 사람들로 이들은 현재 와오라니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 짧은 기사가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와오라니의 인디안, 곧 아우카족이 어떤 종족인가를 알고 있었고, 그 종족을 위해 처참하게 죽어갔던 5명의 젊은이들의 희생이 1950년대 ‘우리 시대의 순교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회자된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신문에서는 이 기적적인 사건의 의미가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 배경을 아는 나로서는 감동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은 그 희생과 죽음이 이룬 기적의 역사를 헤아려보고자 한다.
남미의 에콰도르는 복음의 빛을 받지 못했던 나라였다. 특히 에콰도르 열대 우림지역에 살던 아우카(Auca)족은 복음에 대해 가장 저항적인 부족이었다. 이들은 남미의 인디안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부족으로 외부세계와의 어떤 형식의 교류도 없는 곳이었다. 에콰도르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일했던 데이브 쿠퍼(Dave Cooper)는 아우카족은 수없이 많은 외부사람들을 살해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스페인의 탐험가들, 천주교의 신부들, 금광이나 석유탐사가 등 많은 사람이 아우카족의 희생물이 되었다. 아마도 수십명, 수백명이 이들에 의해 살해되었을 것이다. 아우카족 지역에서는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바로 이 지역의 아우카족에게도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접근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명을 건 모험이지만, 이들과 접촉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선교역사에 큰 기여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로 5명의 젊은 청년, 곧 네이트 세인트(Nate Saint), 로저 유드리안(Roger Youderian), 피트 플레밍(Pete Fleming), 에드 맥컬리(Ed McCully), 그리고 짐 엘리어트(Jim Elliot)였다. 네이트 세인트는 ‘항공선교회‘(MAF)소속 비행사였고, 로저 유드리안은 ‘복음선교회’(Gospel Missionary Union)소속이었다. 나머지 3사람은 형제교회(Brethren Church)의 ‘기독교 대륙선교회’(Christian Missions in Many Lands: CMML) 소속 선교사였다. 특히 이들 청년 선교사들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믿고 ‘믿음으로’ 아우카 인다안 선교계획을 추진했는데, 이것이 ‘아우카 작전’(Operation Auca)이라고 불리는 선교계획이었다. 이들은 1955년 선교 계획을 수립하고 그해 9월부터 아우카족과 접촉을 시도하였다. 아우카족은 앞서 언급했지만 외부인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외부인이 접근하면 사지를 토막내 죽이는 잔인한 습성이 있었다. 따라서 세심한 주의를 요했다. 특히 이들 부족에게는 ‘배반의 습관’이 있었는데, 외부인에게 호의를 표하며 환영의 웃음을 보내지만 갑작스럽게 덤벼들어 살해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1955년 9월 이들 젊는 선교사들은 작은 경비행기(Piper Cruiser)를 타고 아우카족의 땅을 비행하면서 저들과 교제를 시도하였다. 네이트는 비행기를 조정하였고 다른 선교사들은 식품, 의약품, 옷가지 등이 든 선물 보따리를 내려 주면서 우호적인 접촉을 시작했다. 뛰어난 항공 전문가이기도 했던 네이트 세인트는 정글 비행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보조 연료장치를 고안하고, 또 바구니 하강 장치를 부착하여 비행기에서 아우카 족들에게 물건을 내려 줄 수 있도록 설계했던 것이다. 이들 5명의 청년 선교사들은 이 부족에서 떠나 살던 다유마(Dayuma)란 여자를 통해 이 부족의 언어로 인사말을 배웠고, 아우카족과의 교제를 나누기 시작했다. 곧 호의적인 반응을 얻게 되어 이들로부터 답례품으로 앵무새, 땅콩, 원숭이 꼬리 등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첫 접촉을 한지 약 3개월이 지난 1956년 1월 선교사들은 호의적인 방응을 확인하고 경 비행기를 타고 아우카족의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아우카족을 믿어서는 안 된다. 저들은 웃음을 띠고 나타나지만 별안간 살인자로 돌변한다.”는 다유마의 충고가 있었지만, 이제는 염려할 단계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 3개월 동안 나눈 교제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신뢰였다. 뿐만 아니라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기꺼이 바치겠다“는 이들의 각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이곳에 착륙한지 얼마 안 된 1월 8일, 5명의 청년선교사들은 무참하게 살해되었고, 그간의 모든 선교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약 일주일이 지난 후 정찰대에 의해 부패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의 몸에는 화살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이들의 희생은 전 세계적으로 경악스러운 일로 받아드려졌고, 아우카족에 대한 선교 관심을 고조시켜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때 피살된 5명의 선교사 중 한 사람이 짐 엘리어트였다. 그는 휫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제였고 오랜 자기 연마와 절제를 통해 선교사의 길을 준비해 왔는데, 겨우 29세의 나이로 와오라니 지역에서 피살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2년 6월 11일, 이곳 와오라니 우림지역의 외딴 마을 티네노에서 신약성경 봉헌예배가 드려졌다. 다섯 청년 선교사들이 피살된 지 36년이 지난 후였다. 이들의 죽음이 무의미한 죽음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다섯 젊은이들이 무참히 살해된 이후 첫 희생자의 가족들이 다시 이 지역 선교를 시도하였다. 짐 엘리어트의 젊은 아내인 엘리자베스 엘리어트와 네이트 세인트의 여동생 라헬 세인트 등은 위험을 무릎쓰고 남편과 오빠가 무참히 살해된 이 지역으로 들어갔고, 저들의 피나는 희생과 헌신의 열매로 차츰 차츰 복음의 빛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5사람의 선교사가 피살된 지 36년이 지난 이제 그곳 아우카 부족들의 언어로 신약성경이 번역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충격과 감격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일보 기사는 바로 이 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비록 국민일보에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성경봉헌식에서 위클리프 성경 번역선교회의 존슨 선교사는 “... 이 부족과 함께 생명의 양식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존슨선교사는 36년 전인 1956년 살해된 다섯 동료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파견 되었던 정찰 팀의 일원이었다. 짐 엘이어트의 생애에 대해서는 여러 권의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그의 아내 엘리자벧(Elisabeth)이 엮은 ‘짐 엘리어트의 일기’(The Journals of Jim Elliot), 그리고 그녀가 쓴 전기 ‘전능자의 그늘’(Shadow of the Almighty)은 귀중한 문서로 남아 있습니다. 선교는 희생이다.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결실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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