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과의 접촉, 2 ‘며리계’(?里界)에서 미국(美國)까지
한미관계만이 아니라 조선의 대외관계에 큰 변화를 준 사건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었다. 1866년(고종 3년) 7월 대동강으로 들어온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는 통상을 요구하면서 평양에 접근하여 평안중군을 납치하는 등 난동을 부리다가 현지 관민들의 공격으로 침몰되었고, 승무원들도 전원 살해되었다. 이 때 선목(船牧)의 자격으로 이 배에 승선했던 영국인 토마스 목사(Robert Jermain Thomas, 1839-1866)도 처형당했다.
셔먼호 사건을 보고받은 청나라 주제 미국 대리공사 윌리엄스(Samuel Wells William)는 총리아문을 통해 조선측에 승무원의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한편 현지조사를 위한 조치를 취했는데, 이것이 슈펠트와 조선의 만남의 시작이 된다. 슈펠트(Robert W. Shufeldt, 1822-1895)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라는 훈령을 받고 1867년 1월 23일 군함 와추세트(Wachusett)호를 이끌고 조선서부해안에 도착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셔먼호 승무원들이 살해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1871년 조선을 침략했는데 이것이 신미양요(辛未洋擾)였다. 청나라 주제 로우(Frederich F. Low, 1828-1894) 공사와 해군제독 로저스(John Rodgers, 1812-1888)가 이끄는 아시아함대를 조선에 파견하였는데, 전세는 조선 측에 불리하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대원군은 12자로 된 척화비를 종로 네거리 등 전국 곳곳에 세웠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짓이니라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이를 통해 배외감정을 격화시키고 척사위정사상을 강화시켰다. 미국 아시아함대는 광성보(廣城堡)를 함락하기도 했으나 조선이 지구전으로 나가자 그해 5월 함대를 이끌고 철수하고 말았다.
미국 함대의 침입은 조선으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차츰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영의정 김병학(金柄學, 1821-1879)은 해국도지(海國圖志)를 인용하여 “미리견(美利堅)은 부락만 있을 뿐이었는데, 중간에 화성돈(華盛頓)이란 자가 나와 성지(城池)를 개척하고 기지(基址)를 세워 해외의 양이와 통섭(通涉)하고 있으며 영길리(英吉利)와 아마도 가장 가까운 것 같다.”고 썼다. 그가 말하는 ‘화성돈’이란 조지 와싱톤 대통령을 칭하는 것이었고, ‘영길리’란 영국을 의미했다.
미국 함대의 침입을 계기로 척사 혹은 배외쇄국(排外鎖國)이 강조되기도 했는데, 유림도 척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항로(李恒老),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이었다. 반대로 통상과 개국을 요구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규경(李圭景, 1788-?), 박규수(朴珪壽, 1807-1877) 등이었다. 그렇다고 박규수가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배외쇄국의 주전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개국 혹은 개화론자는 매국지율(賣國之律)로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규수가 공개적으로 개국론을 펴기 시작한 것은 대원군이 하야 한 이후 일본의 강요로 조선이 일본과 조약체결의 협상을 벌리고 있을 때부터였다.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親政)을 시작한 때는 1873년(고종 10년)이었다. 조선의 정치적 변화가 일자 일본의 조선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그래서 1875년 운양호사건을 도발하였고, 이를 구실로 사절단을 강화도로 파견하여 협상을 강요하였다. 일본의 강요에 못이겨 조선측에서는 접견대관(接見大官) 신헌(申櫶, 1810-1888) 등을 강화부로 파견하여 일본사절과 접촉하게 된다. 당시 조선에서는 척화론이 우세하였고, 유림에서도 척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의 압력, 곧 군사적인 위협 하에서 그 요구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어 소위 ‘제왜’(制倭)와 ‘척양’(斥洋)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척화론에 대처하면서 1876년(고종 13년) 일본과의 조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강화도 조약’ 혹은 조일수호조약이다. 부산과 제물포 그리고 원산 등 3항구를 일본에 개방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말하자면 조선의 외세에 의해 강압적으로 개항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과 한국에서는 각기 다른 이유에서 한미간의 수교를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경우 아론 사전트(Aron Sargent)상원의원은 조선과의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대표를 파견하자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는 조선을 미국과 우호관계에 두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만일 러시아가 조선을 차지하면 일본에 대한 영구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제의는 해군성(海軍省)의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다. 해군성은 1878년 슈펠트제독에게 세계를 돌면서 미(未) 수교국에 대한 통상외교 교섭권을 부여하는 훈령을 내렸다. 이 훈련에 따라 슈펠트가 극동지역으로 떠날 무렵 청나라의 이홍장(李鴻章, 1823-1901)은 러시아 세력의 남하와 일본세력의 조선 진출을 막기 위해서는 조미(朝美)수교가 바람직하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갔던 수신사 김홍집(李弘集, 1842-1896) 또한 청나라 공사 하여장(何如,璋, 1838-1901), 참찬관 황준헌(黃遵憲, 1848-1905) 등과 접촉하면서 조선이 러시아의 남하 혹은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서양, 특히 미국에 대한 문호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하여장은 미국이 조선과 조약 체결을 희망하고 있으므로 조선은 미국과 수교하여 러시아를 견제해야 한다는 소위 연미론(聯美論)을 권고했던 것이다. <조선책략>(朝鮮策略)은 이런 배경에서 씌여졌다. 황준헌이 쓴 이 책에서 조선의 급선무는 방아(防我)에 있고, 방아는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하는 한편 자강(自强)을 도모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 핵심은 연미론이었다.
고종은 러시아의 남하 혹은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척사정책을 수정하게 되었고, 대미수교방침을 청국에 통고하였다. 일부의 관리들이나 유생들은 위정척사론으로 연미론을 반대하였고, 미국은 6만리나 떨어져 있어 우리가 위급할 때도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없다는 현실을 제시하면서 반대하였다. 그러나 조선측으로부터 미국과의 조약협상을 위임받은 이홍장은 천진(天津)에서 슈펠트와 여러 차례의 회담을 한 끝에 가조약을 성립시키게 된다. 1882년 4월에는 정식으로 조선과 미국 간의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이 ‘조미통상조약’(朝美條約)인데, 한미관계의 시작이었다. 아시아 진출을 희망하는 미국과 슈펠트제독의 외교력, 그리고 러시아 세력을 제어하려는 청나라 이홍장의 협상이 가져온 결실이었다. 이제 한국은 은둔의 문을 열고 역사의 한가운데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첫 대면이 미국이었다.
*며리계 :아메리카 (America)
2며리계 : 남북으로 갈라진 상태의
미국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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