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칼럼

강릉 옛길을 거닐며
나는 산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스님이 되었으면 유명한 고승(?)이 되었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워낙 바쁜 일정을 보내다보니 산에 갈 시간이 없다. 기껏해야 교회 뒷산이나 분당에 있는 불곡산이나 죽전 인근에 있는 법화산 정도를 오르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모처럼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길을 떠나 강릉 옛길을 걸었다. 강릉옛길은 신사임당과 율곡, 또한 천재시인 김시습과 같은 과거 조상들이 한양을 가기위해 오고 가던 길이다. 뿐만 아니라 청운의 이상을 품고 과거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옛 선비들이 숨을 헉헉 거리며 터벅터벅 넘어갔던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길은 꿈으로 가득한 길이요, 청운의 푸른 꿈이 나무 잎사귀 하나, 하나에 매달려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한 선비라면 얼마나 그 강릉 옛길을 환희에 차서 달려갔겠는가? 잠시 나무에 기대었을 때 장원 급제한 선비를 맞는 고향 마을사람들의 꽹과리 소리와 북 치고 장구 치는 신명난 잔치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성공한 자만이 있었겠는가? 십 수 년을 학문을 닦고 닦아도 성공하지 못하고 낙방하여 돌아오는 한 선비의 처진 어깨와 어둔 그림자... 그가 터벅터벅 쓸쓸하게 혼자 걸어가야 했을 강릉옛길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얼마나 죽고 싶은 심정에 몸부림치며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였을까?
어느 선비는 황진이의 시조 한 수를 읊으며 넋을 놓고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 주야에 흐르니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 가고 아니 오노매라” 강릉옛길을 걸으며 참으로 오랜만에 회색빛 도시를 벗어나 깊은 상념과 자연의 정취를 느껴보았다. 그러면서 나와 현대인들이 처한 오늘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쳐 일해도 50세만 넘으면 명퇴를 당하고, 구조조정의 칼날에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초초하고 불안한 삶... 그 어디에서 참된 행복과 안식이 있을까?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 속에서, 온갖 스트레스와 공포,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목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정말 그들에게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길동무가 되어 주고, 마음의 편안함을 주는 숲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과거 시험에 낙방하여 죽고 싶은 심정으로 강릉옛길을 걷고 있는 선비에게 말을 건네는 시냇물처럼,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식혀주는 나무처럼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시달려 지친 사람들의 영혼에 편안한 안식처요, 길동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다시 일어서세요. 당신은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비록 지금은 실패했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과거에 떨어진 한 선비가 죽고 싶은 마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을 때 아무리 아름다운 강릉옛길이라 하더라도 어찌 그의 마음을 다 위로 해 줄 수 있었겠는가? 나 또한 모든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하나, 하나 다 달래어 주지 못하고, 그들의 눈물을 하나, 하나 닦아 주지 못하는 나의 아쉬운 마음을 강릉옛길에 묻어두고 터벅터벅 빈 발자국 소리만을 남겨둔 채 고요히 떠나왔다.

201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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