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餘裕)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유병언씨 사건은 너무도 허망하고 황당하게 마무리된 것 같다. 소위 구원파라는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간판 아래 교주로서의 온갖 이야기를 남긴 유병언씨의 시신이 언론에 공개된 것을 보면서도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사이비 이단에 대한 개념정리가 안 될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마지막 세상에 보여준 유병언씨의 시체에 우글거리는 구더기를 보면서 하필 왜 저렇게 자기 인생을 마무리하는가도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사이비 이단 교주들의 말로를 많이 보아왔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비애를 금할 수 없었다. 구원파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의 교주의 시체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그 마지막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이것이 어디 그들의 이야기뿐이겠는가?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서 무엇 때문에 속이고 속고, 아프게 하고 아픔을 당하고, 미워하고 갈등하며 살아야 하는가도 새삼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새삼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는 자녀답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믿음 있는 삶이다. 믿음 있는 삶을 다른 표현으로 사랑하는 삶이다. 사랑하는 삶이란 여유 있는 삶이다.
여유(餘裕)가 무엇인가? ‘성급하게 굴지 않고 사리 판단을 너그럽게 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일상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넉넉함을 느낀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지라도 마음에 여유를 가진 사람은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된다.
다윗은 사울에게 10여 년 쫓기는 생활을 했지만 쫓아가는 사울은 여유가 없었고 쫓기는 다윗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결과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역사에 교훈처럼 남겼다. 여유 있는 다윗을 통하여 내려놓음, 비움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내려놓음, 비움의 그 빈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다윗의 삶의 전부였다. 그것의 다른 표현이 여유이며,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 있는 사람은 일상에서도 여유 있는 삶이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12장에서 베드로가 투옥되어 다음날에는 처형될 상황인데 옥중에서 깊이 단잠을 자고 있었던 것도, 사도행전 16장의 바울과 실라가 복음 전도하다가 투옥되어 낭패스러운 상황에서도 찬송과 기도로 철야하는 상황도, 일곱 배를 뜨겁게 한 풀무 앞에서도 태연스럽게 느브갓네살을 향하여 담대하게 하나님 신앙을 외칠 수 있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상황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여유다.
Time-Sickness(시간병)이란 말이 있다. 미국의 내과의사 ‘래리 도시’가 만든 개념인데, ‘시간이 달아나는 것 같은 기분’,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계속 가속 페달을 밟는 현상‘을 뜻한다. 2010년도에 job korea가 한국인 남녀 직장인을 대상으로 <시간병 체감 현황>에 관해 조사한 내용이 발표되었는데 한국의 남녀 직장인 10명 중 7명(77.7%)이 시간에 쫓기는 ‘시간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급하지 않은데도 발걸음이 나도 몰래 빨라지는 것,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 말을 쏟아내는 것, 조금만 기다리는 시간도 짜증으로 바뀌는 것, 심지어 해외여행을 하면 어떤 나라에서도 호텔직원들이 한국인들을 영접하면서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 이 모두 생활의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자괴감이 드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마저도 여유를 잃어버린 듯하다. 오늘의 교회 현상을 들여다보면 여유가 보이지 않는다. 조급하고 분주하고 말이 많고 그러다 보니 평안이 없다. 어머니 품 같아야 할 교회가 먼지를 일으키는 광야길 사막과 같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영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의 일상이 어떤가? 설교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마음이 흐트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시계를 들여다보거나 통성기도 시간은 5분을 넘기기 어렵고, 찬송도 두 곡을 부르면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지고 입을 다물어 버리고, 인사시간이 민망하고 짜증스럽고, 축도도 끝나지 않았는데 일어서서 예배당을 나간다. 한 마디로 여유가 없는 일상이다.
정말 민망한 것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기름 부음의 임직식 행사도 대부분 내용보다는 시간에 의하여 진행한다. 그래서 설교도 권면도 축사도 ‘짧게, 짧게’가 습관화되고 있다. 한 마디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생활의 여유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 내고 대인관계가 삭막하게 되는 것이다. 여유 있는 삶은 감동이며 기쁨이고 은혜와 평강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도 생활의 여유도 영적인 여유도 없다. 꼴뚜기처럼 뛰다가 낭패만 당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생활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문제를 더 큰 문제로 만든다. 영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은 어떤 일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하는 것이 생활습관이 되어 살아간다.
여유 있는 마음은 감사와 기쁨이며, 여유 있는 생활은 평안과 행복이며, 여유 있는 신앙은 은혜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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