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역할
모든 조직은 관계로 만들어져 있다. 즉 가족은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로 만들어진 관계이며, 회사란 사장과 직원, 동료와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는 목사와 교인, 당회는 목사와 장로로 만들어진 조직인 것이다. 이 모든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관계를 잘 해야 하는데 각자가 관계를 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건강하고 밝게 지내면서 상대방이 필요할 때 사랑을 주며 사랑을 준 후에 그 만큼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관계는 갈등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즉 내가 아버지라면 나는 아버지로서 건강하고 밝게 자신의 삶을 잘 살면서 자녀가 돈이 필요할 때 돈을 주며,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주는 등의 사랑을 주면서 사랑을 주는 대가로 참견하기보다 자녀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딸은 지금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있다. 참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 주에 만났을 때는 얼굴이 많이 말라 있었으며, 초기와는 달리 잠도 오고 피곤하다고 한다. 지난 6월에는 수능 모의고사를 봤다. 내 마음에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면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혹시 올해 수능에도 점수가 잘 안 나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역할만 할 것을 다짐해보았다. “너 수능 잘 못 보면....” 여기까지 얘기하자 딸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이어서 “네 긴 머리카락을 다섯 개로 땋아줄 것이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딸은 안도하며 생글생글 웃었다. 혹시나 딸이 수능을 잘 못 보더라도 내가 어떻게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으며 내가 딸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딸이 아버지의 기대만큼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도 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만들어준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냥 아버지로서 내 삶을 건강하고 밝게 살면서 딸에게 사랑을 주고 자유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남편 혹은 아내는 스스로 건강하고 밝게 자신의 삶을 잘 살면서 상대방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야 한다. 아내가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올해에는 팔이 아파서 혼자서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도와줄게.”하면서 서투르지만 여름 내내 음식 만드는 것을 돕고 있으며 2,000명분의 설거지를 하고 있다. 아내는 나의 도움에 팔이 아프면서도 힘을 얻어서 깊은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아내가 혹은 남편이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되어 주며,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때 격려해주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은 그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 후 아내에게 아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야 한다.
어떤 남편은 건강하고 밝게 자신의 삶을 잘 살기는 한다. 그리고 돈도 잘 벌어다 준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서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거나 아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이 관계는 깨어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을 잘 살기도 하고,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내가 한 것을 근거로 아내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왜 하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자유를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부부의 관계가 망가지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관계 속에서 목사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건강하고 밝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면서 주려고 하는 사랑이 있는가? 그리고 준 것을 근거로 잔소리하지 않으면서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있는가? 혹은 나는 내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을 돌아보아 더욱 건강한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괜찮은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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