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임중 목사의 칼럼

필요한 것 없니?
혜원이, Grace가 올해로 열 살이다. 콜롬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하는 아들 목사 따라 미국에 간 지 벌써 5년, 이제는 벌써 초등학생이 되어 공부하고 있는데 070 전화로 거의 매주 화상통화를 한다. 세월 참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통신에 늘 고마움을 갖는다. 매일처럼 녹음기 틀 듯 문안하는 전화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것이 할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손주들은 다섯 살까지는 온갖 재롱을 부리다가 일곱 살이 넘어서면 할아버지 전화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장로님의 경험담을 듣고 “우리 혜원이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것이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손주 사랑의 성장통(成長痛)인가 보다.
장로님들이 손주들 손을 잡고 예배당에 출입하면서 손주 자랑을 할 때만 해도 “유별나게 그러지 말라”고 농담을 건네면 그것조차 행복해하시면서 “내가 예언을 하는데 목사님은 나중에 손주 보면 나보다 백배 더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아닐 것입니다.”라고 호언장담했던 나를 두고 이제는 교인들이 장로님들보다 훨씬 심한 중증이라고 농담을 한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손주의 사랑이다.
지난해인가? 혜원이와 통화를 하면서 “혜원아 요즘은 왜 노래도 안 불러 줘? 예쁜 무용도 안 하고?” 하면 “할아버지 이젠 혜원이가 애기가 아니잖아. 쑥스러워.” 그러면 “그래도 할아버지는 혜원이 노래 듣고 싶은데... 그건 그렇고 뭐 필요한 것 없어? 요즘은 왜 사 달라고도 안 해?”라고 물었을 때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필요한 것 없어요. 다 있어요.”라고 한마디로 딱 잘라 대답을 했다. 그것이 못내 섭섭해서 “왜 없어? 있잖아? 인형 사줄까? 무엇이든 이야기 해 봐. 할아버지가 다 사 줄게” 그래도 이 녀석 입에서는 여전히 “필요한 것 없어요. 다 있어요.”였다. 순간 모든 것이 하얗게 되는 감정이었다. 이것저것 사 달라할 때 “또 뭐 없어?”하면 “음... 또 인형 사주세요.”하던 혜원이가 이젠 어린아이가 아니구나 생각은 하지만, 그 말이 마치 “할아버지도 필요 없어요.”라는 느낌이 들어서 전화를 끊고 서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허전한 마음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노랫말처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면서 손발이 다 닳도록 보듬고 안고 키워준 혜원이가 이젠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된 어린이로 성장한 것이 할아버지에게는 성장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이기적 마음으로는 세 살 그때로 멈추었으면 더 좋겠다는 정말 웃기는 생각을 하면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아내가 벌써 눈치 채고 “전화 내용이 시원찮았던 모양이지요?”라고 한 마디 건네는 말을 듣고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을 애꿎은 아내에게 쏟아냈다. “오냐, 그래 필요한 것 없다 했지. 내가 아니면 너희들 어떻게 생활 해. 이제는 국물도 없다. 여보 이번 달 생활비 보내지 마, 알았지? 그래 한 달만 그렇게 지내봐라. 나 없이 너희들이 살아?”라고 혼자 씩씩거리니까 아내가 한 마디 건넸다.
“혜원이하고 전화하고 섭섭한 마음을 왜 나한테 풀어내요? 혜원이가 이제는 애기가 아니잖아요. 혜원이한테 그렇게 올인하지 말고 당신이나 하나님께 잘 하세요.” 그 순간 성령님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시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신이나 하나님께 잘 하세요.” 아내의 한 마디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 내 생활이 마치 내 앞에서 혜원이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목회 초년병 때는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도 찬 이슬 맞으면서 기도하고 밤을 새워 하나님을 찾고 온갖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것저것 달라고 그렇게 부르짖었던 내가 지금은 어떤가? 그렇게 원하는 것 하나님이 다 주셔서 이렇게 모든 것이 축복의 삶이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리는 일도 없고 하나님께 필요한 것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없는 생활에 익숙해 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서 목사, 요즘 너 왜 나에게 달라고 하지 않니? 필요한 것 없니?”라고 물으실 때 “앞 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필요한 것 없어요.”라고 한마디로 대답을 할 상황이 지금의 내 모습이며 생활인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견딜 수 없었다. 깨달음이 오는 순간 온몸이 떨렸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아내가 다가와 엄마처럼 저를 안고 등을 쓸어 주면서 위로했다. “하나님은 혜원이를 통해 당신을 멋지게 훈련하고 계시네요.” 그래서 언젠가 설교시간에 강단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교인들에게 권고했었다.
“저만 그렇습니까? 여러분도 다를 바 없습니다.”
2014년 부활절을 맞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 부활 신앙 아니겠는가?

201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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