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雜草) 인생
매 주일 아침이면 강상운 원로장로님은 목양실에 들러 목사를 한 번 안아주고 예배를 드리러 성전으로 올라가신다. 은퇴 전에도 종종 그러셨지만, 은퇴 후에는 한 주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나가실 때는 꼭 덕담 한 마디 하시고 “읽어보니 감동이 되는 글이니 목사님도 한 번 읽어보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한 주간 사역하십시오.”라고 하시면서 꼭 인쇄물 한 장을 건네주신다. 지난 주일에 건네준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인터에서 그 글의 내용을 자세하게 찾아보았다.
주제가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라는 글인데 신문에 실린 ‘토종 들풀 종자은행’이야기였다.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들풀 1백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종자은행을 세웠다는 이야기로서 강병화 교수가 남긴 짧은 글이지만 큰 감동을 주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죠. 산삼(山蔘)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내가 잡초학을 전공했지만, 잡초는 없어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잡초일 뿐, 실제로는 잡초가 아닙니다. 야생초, 들풀, 자원식물이지요. 사람이 농사짓고 생활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 잡초라 한 것이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메시지다. 흔히 ‘잡초 같은 인생’이라는 말을 한다. 밟히고 또 밟히면서도 다시 솟아나는 들풀에 빗대어 보편적 서민들을 그렇게 표현하기도 하고, 인생 막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헐떡거리면서 죽지 않고 일어서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라는 말은 복음적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없다는 이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호승의 <이 시를 가슴에 품는다>에서도 “꽃과 잡초는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잡초란 인간이 붙인 지극히 이기적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뭐라고 하던 제비꽃은 장미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고 꽃을 통해 인간의 존재의미를 되새겨 주었다. 아름다운 꽃이든 잡초든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아름다운 꽃이나 잡초로 표현된다는 말이다.
강병화 교수가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종자은행을 세우고 “산삼(山蔘)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내가 잡초학을 전공했지만, 잡초는 없어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잡초일 뿐, 실제로는 잡초가 아닙니다.”라고 한 말은 나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오늘의 메시지다. 즉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한 존재다. 하지만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있을 때는 아무리 존귀한 것일지라도 잡초가 되는 이치를 일깨우는 이야기다. 그래서 성경은 지붕 위에 난 풀과 같은 존재를 일깨우면서 그것이야말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한 잡초임을 교훈한다. 그 잡초 같은 인생은 자라기도 전에 말라버리고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한다고 경고했다. 그것이 잡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기본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를 깨닫게 한다. 즉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 위치질서(位置秩序),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역할질서(役割秩序), 상하좌우의 관계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연출하는 관계질서(關係秩序)가 건강한 삶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지니고 누리고 갖추었을지라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면 잡초인생이다. 그러나 배움이 짧고 가진 것 부족하고 누림도 없으며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잡초인생이라는 말을 감히 누가 붙일 수 있을까?
안병욱 교수가 갈파한 것처럼 내 마음이 더러우면 모든 것들이 더럽게 보이고 내 마음이 맑으면 모든 것들이 맑게 보인다는 안경론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즉 감사의 안경, 행복의 안경을 끼면 일생을 그렇게 살아간다는 살아감의 이치를 일깨우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예수님께서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어차피 인간사의 현실에는 알곡과 가라지는 함께할 수밖에 없지만, 추수 때가 되면 분명하게 구별되니 가만두라고 하신 말씀이 진리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라는 이 한 마디를 마음에 새기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주어진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함으로 잡초인생이 아니라 알곡인생으로 주님 앞에 서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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