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한해의 달력도 마지막 장이 서산의 해 넘어가듯 한다. 창문을 후리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오늘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을 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함이 메마르고 광야 사막 길 먼지 같은 온갖 불평과 원망의 넋두리가 삶의 옷이 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말씀 사역으로 헌신하면서 느끼는 아픔 가운데 한 가지가 있다. 이전에는 성도들이 힘들어도 아프더라도 성도들이 성전에 올라오면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함에 몸도 마음도 피곤함에 지친 삶도 평안과 쉼을 경험하면서 희망과 생명의 힘을 입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회마저도 사랑에 젖어드는 눈이 아니라 퀭하게 메말라버린 눈빛에 겨울 바닷물처럼 차가운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조용필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오늘날 사람들은 겨울 바닷가 바위를 후려치고 스스로 몸을 하얗게 부숴버리는 파도처럼 차가운 느낌이 들게 하는 말들을 쉽게 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하며 축복하고 감사하는 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김없이 올해도 성탄절을 맞는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2천년 전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면서 오늘의 예수님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탄의 기쁨이라 할 수 없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작은 자들이 곧 예수님이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그 작은 자는 비교원리가 아니라 창조원리에 적용하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목회 현장에서 “작은 자는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퇴근할 무렵이면 예배당 마당 구석에서 목사를 기다리는 분이 계신다. 어느 한 주일도 예외가 없다. 그분은 1년 365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역사를 이야기하면 천재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해박하지만, 아이들이 표현하는 말로 2% 부족한 분이다. 내가 현관에 나타나면 한걸음으로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지갑에서 만 원을 그분의 손에 쥐여 드리고 어깨를 한 번 감싸 두드려주고 “밥 잘 잡숫고, 똥 잘 누시고, 아셨지?” 하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쏜살같이 달음질하며 돌아간다.
어느 날 지갑이 비어 있었다. 낭패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목사는 그냥 인사만 하고 천연스럽게 모른 척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말 없이 차를 몰고 떠나는 목사를 몇 번 돌아보며 예배당을 떠나는 그분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리고 그 한 주간은 불편스럽기 그지없이 보냈다. “어이구 이놈의 목사야, 빌려서라도 드려야지. 한 주간동안 얼마나 널 보고 싶어 했겠니?” 스스로 자책하면서 마음이 천근만근이 되어 한 주간을 보냈다. 괜스레 스스로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나고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후에는 누구에게라도 빌려서 꼭 만 원을 그분의 손에 쥐여 드렸다.
목사를 보고 싶어 하는 그분, 손에 만 원을 쥐어 드리면 금방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천진스럽게 어린아이처럼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분의 모습은 수천만 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간애, 순수함. 그것이다. 나는 주일마다 그렇게 그분을 만난다. 말 한마디 없는 그분은 수천만 마디를 눈빛과 표정으로 목사에게 말한다. 그러던 그분이 어느 주일에 보이지 않았다.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혹시 싶어 차 안에서 잠깐 기다려 보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 편찮으신가?” “혹시?” 그러다가 다음 주일에 나타난 그분을 보면서 괜스레 눈시울이 젖었다. “아픈 데 없지? 괜찮지요?” 그러면서 그 날은 2만 원을 손에 쥐여 드렸다. 목사는 그렇게 주일만 되면 만 원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그분은 나에게 있어서 오늘의 예수님이다. 그래서 그분이 나를 보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올 때 나는 주님을 보듯 반기고, 그것이 매 주일의 행복한 시간이 되었고, 나도 매 주일 그분을 주님처럼 생각하며 보고 싶어진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당부, 갇힌 자를 찾아주고, 목마른 자에게 냉수 한잔 주고, 헐벗은 자를 입혀주고, 아픈 자를 찾아 위로해 주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은 유별난 행동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일 수 있고, 때로는 문안 전화 한 통일 수 있고, 요즈음 같으면 문자 메시지 한 줄일 수 있고, 내가 기도할 때 한 마디 중보일 수 있고, 내가 먹던 것을 나누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의 동행이다. 그것이 나눔의 축복이며, 행동하는 믿음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유별난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날마다 오늘의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하며 사는 것 아닌가. 언젠가 동경에 있는 ‘고시래’식당에 갔을 때, 수많은 손님이 식당 주인 욘사마 배용준 씨를 그리워하면서 ‘그분은 언제 오실까?’ 고대하는 마음으로 그 비싼 음식을 주문하여 먹던 것이 생각이 났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다시 오시는 그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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