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마음 알아주기
고1때 였습니다. 미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존경 받던 인기교사였습니다. 잘못한 학생을 불러내어서 손바닥으로 학생의 이마 위를 비껴 올려치는데 그 기술이 가히 예술이었습니다. 맞는 학생이나 구경하는 학생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그 때문에 선생님의 별명은 강타였습니다. 어느 미술 시간 연필로 자전거 데생을 했습니다. 저는 미술에 별 소질이 없었는데 그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봐도 잘 그렸습니다. 한 사람씩 결과물을 들고나가서 선생님께 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도 제 그림을 보여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제 그림을 한 번 보고 제 얼굴을 힐끗 올려다보십니다. 그리고 제게 묻습니다. “이거, 네가 그렸어?” “네.” 선생님은 저를 믿지 않는 겁니다. 선생님의 채점 수첩에는 이전 점수가 다 기록되어 있었으니까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점수를 수첩에 기록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의심 받은 것이 너무 기분 나빴습니다. 그 후로 그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거두어버렸습니다. 지금쯤 만나 뵈면 이런 추억담 나누게 되겠죠. “선생님, 저 그때 무척 기분 나빴습니다. 선생님이 제자를 믿어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야, 이 녀석아,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데 네가 선생 같으면 쉽게 믿어졌겠냐?” “하긴, 선생님 말씀도 맞네요.” 하하, 함께 웃으면서 결론은 이렇겠죠?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얼마 전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잘못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진행되면서 제가 아끼는 사역자 한분이 마음에 크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제가 모든 기억력을 동원해서 잘잘못을 밝히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한 분이 코너에 몰릴 상황이었습니다. 이틀을 고민한 끝에 모든 잘못을 제가 다 뒤집어쓰기로 결심하고 상처 입은 분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두 가지 상황에 대해서 제가 거짓말했다, 제가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군소리하지 않으려고 아예 글로 정확하게 써서 읽다 시피 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울음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제 전화를 받고 제게 달려왔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좋게 헤어졌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 한구석에는 난 잘못이 없는데 하는 억울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모든 것이 역전되었습니다. 제 잘못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겁니다. 저는 헛 사과를 한 셈입니다. 물론 그 헛 사과 덕에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는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에이, 뒤집어쓰고 말지”라고 생각하는 건 쉽습니다. 그러나 입으로 말을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큰 아들은 학교 선생님, 둘째 아들은 대기업 간부, 막내는 맏며느리가 업어 키우다시피 했는데, 드디어 결혼을 합니다. 둘째 아들은 와서 이럽니다. 예식장, 내가 아는 친구에게 어디 부탁해놨어. 둘째 며느리도 맞장구를 칩니다. 이런 저런 경비 내가 다 감당할게. 첫째 며느리는 주눅이 듭니다. 자식처럼 키운 막내 도련님, 무언가 많이 해주고 싶은데 고지식한 남편에게 이야기 조금 꺼냈다가 “형편 되는 대로 하면 돼”라고 면박만 당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부릅니다. 봉투 하나 내밉니다. “이건 네가 준 용돈 모은 거다. 20년 이상 모았으니 그리 적지는 않을 거다. 네 마음껏 써라. 네가 대들보 아니냐? 둘째한테 기죽지 말고.” “힘내, 얘, 네 마음 내가 다 안다.” 맏며느리는 눈물을 주루룩 흘립니다. 마음속에 쌓여있던 억울함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남의 잘못까지 뒤집어쓰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무죄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초현대화된 통신 수단을 통해서 온갖 중상모략이 온 세상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런 짓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마음 알아주기,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훈련과목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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