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임중 목사의 칼럼

부활 신앙인의 삶
지난 노회 기간에 아픈 몸으로 참여하였다가 너무 몸이 피곤해서 견딜 수 없기에 잠깐이라도 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회의장을 빠져 나와 교회 마당에 내려섰을 때, 눈에 들어온 한 장면은 담벼락에 기대 선 한 젊은 목사님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K목사님은 나를 보고 놀라는 면이 역력했는데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뭔지 모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내게로 전달되면서 나는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나누었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목사님! 하나님은 분명 살아 계시는 것이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나는 농담하는 것이려니 하면서 말없이 웃기만 했다. 목사 2년생인 K목사의 말은 계속 되었다. “서목사님, 저는 요즈음처럼 목사로서 고뇌하고 아파하는 날들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에서도, 노회에서도, 동역자들의 모임에서도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느낄 수 없으니 제가 타락한 것입니까? 아니면 기독교 현실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생각보다 심각한 K목사의 손을 잡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그의 아픔과 나의 아픔을 섞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목회 현장에서 경험하는 숱한 아픔을 견뎌내지 못한 젊은 목사의 고뇌스러움을 듣고 나는 무학대사와 이성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한 마디 덧붙여 말했다.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죽도시장 새벽 장터에서도, 포항제철 용광로 앞에서 구슬땀을 쏟으면서도, 막노동판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일을 하는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커피 한잔을 양손으로 감싸고 울먹이면서 “제가 너무 지쳤나 봐요. 부활신앙으로 목회 더욱 잘 할게요.”하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목사님을 나는 일으켜 세우고 내 품에 안고 한 마디 더 해 드렸다. “목사님의 그 고민할 수 있는 마음은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언젠가 우리교회에서 시각장애인 황재환 전도사님의 피아노 연주와 간증집회를 가졌다. 앞을 보지 못하고 한 손이 없으면서도 피아노를 4부로 연주하는 찬양 전도사 황재환, 그의 연주회에 참석하여 앞을 보지 못하면서 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불렀던 찬양곡은 석 송 씨가 작시하고 김민식 집사님이 작곡한 “주님 당신은”이었다. 나는 그날 참 많이도 울었다. 그의 찬양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그 음률 하나하나가 내 귀를 통하여 가슴에 닿을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이 내 곁에 현존하심을 느꼈다.
<아무도 말 않는 날에 당신은 말합니다. 아무도 안 오는 날에 당신은 오십니다. 아무도 뵈지 않아도 당신은 보입니다. 아무도 웃지 않아도 당신은 웃습니다. 당신은 말씀이며 당신은 실상이며 당신은 친구이며 당신은 평화이며 목마른 가슴속에 끝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샘물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충만하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려 해도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너무 많다. 그것이 자기 자신 문제 때문이든, 아니면 현실적 상황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의 상처로 인한 것이든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분명 그리스도인으로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K목사는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아파할 줄 모르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실적 상황에 아파하고 고뇌하고 있었기에 그의 아픔은 그의 가슴에 계신 하나님의 아픔으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도 예수님을 느낄 수 없다가 예수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실 때 마음이 뜨거웠던 것을 상기하면서 그분이 예수님 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을 생각해 보면 오늘도 우리는 숱한 만남의 관계를 가지는데 너와 나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 부활신앙인의 삶이다.
화학 용어로 ‘하이퍼골릭’(hypergolic)이란 용어가 있다. hyper 치솟는다는 의미이고, golic은 연료를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가령 두 가지 화학 물질이 있는데 이들이 각각 따로 있을 때는 아무런 화학 반응이 없다. 그러나 두 가지를 접촉하게 되면 발화하거나 폭발한다. 우주선도 그 기본 발상은 “하이퍼골릭” 현상에 의한 연소 작용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이용하는데서 착안되었다. 불기둥을 뿜으며 하늘로 치솟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바로 이런 영적 불기둥이 솟는다. 마음이 뜨거워지며 희망과 용기가 생겨난다. 이것을 나는 “신앙의 하이퍼골릭”이라고 하고 싶다.
우리가 혼자 있으면 아무 힘도 없지만 그리스도와 접촉하게 되면 발화가 된다. 희망으로 발화한다. 용기로 발화한다. 기쁨으로 발화한다. 사랑으로 발화한다. 그리고 내 삶의 장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경험함으로 신앙의 하이퍼골릭 현상이 나를 통해서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에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부활신앙인의 삶이다.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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