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걷는다
나는 태어난 지 9개월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53년을 살아왔다. 그래서 왼쪽 다리는 짧고 약하다. 특히 뒤꿈치는 힘이 전혀 없어서 한 발로 설 수 없고 걸을 때마다 온 몸이 기우뚱하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걷지 않고 왼쪽 다리를 땅에 살짝 닿게만 하고 온 몸을 오른쪽 다리에 의존해서 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왼쪽 다리는 힘이 빠졌고, 오른 다리는 혼자 온 몸을 지탱하느라 종아리가 뭉치고 쥐가 자주 났다. 어떤 때는 걷기도 힘들어서 앉아서 오른쪽 다리를 주무른 후에 겨우 걷곤 했다. 그러나 나는 기뻤다. 왜냐하면 이제 다리 때문에 거절당하는 일도 없고, 강의도 많아지고, 가족에 대한 책임도 어느 정도는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내 다리를 포기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나는 두 다리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왼쪽 다리에 힘이 생겼고 뭉쳤던 근육이 살아나고 있다. 왼쪽 다리를 들어 툭 떨어뜨려서 걷던 내가 왼쪽 다리를 들어 살며시 놓으며 한 발, 한 발 걷고 있는 것이다. 어깨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고등학교 교련시간 에 친구들이 구령에 맞추어 “앞으로 가!” “뒤로 돌아 가~!” “왼발, 왼발..”하면서 구령에 맞추어 사열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그 구령에 맞추어 팔을 흔들며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아내와 아이들, 특히 부모님께서 놀라고 좋아하신다. 부모님은 어릴 때 걸음마와 재롱을 못 보시고 가슴 아파하셨을텐데 53년 만에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의 한스러움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리는 것 같다. 경락마사지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경락마사지에도 진짜 선생님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하루 가면 걷는 모습이 달라지고, 이틀을 가면 또 걷는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나는 늘 스텝에 맞추어 춤을 추고 싶은 소망과 달리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소망은 이 땅에서는 가능하지 않고 죽어서 천국에 가서야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고 있다.
성경에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물음에 제자들이 “주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좌, 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정한 사람에게 주실 것이고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다리 근육을 푸는, 뼈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겪을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다. 나는 어제도 이 고통을 겪었다. 나는 내일도 기꺼이 이 고통을 겪을 것이다. 무서울 만큼 큰 고통이다. 얼마 동안 이 고통을 겪을지 모르지만 고통의 끝이 새로움이 시작되는 자리일 것이다.
나는 다리로 인해서 심한 가슴앓이를 했다. 그 덕에 상담도 하고, MPM훈련도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삶이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비법을 배웠다. 반면 나는 육체의 고통에는 무서움을 갖고 있는데 요즈음 육체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 마취제를 맞고 경락을 받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53년간 뭉쳐진 근육을 풀어내고, 근육사이의 노폐물을 뽑아내고 근육에 힘이 생기게 하는 것은 극심한 고통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물론이고, 경락 원장님의 정성어린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고통을 기꺼이 겪어내야 가능한 것이다.
나는 지금 걷는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그것도 극심한 육체의 고통을 겪고 또 겪으면서 잘 걷게 되는 것이 너무 좋다. 이제 53년간 간직해온 다리를 보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냥 보낼 수 없다. 지극한 고통을 겪으면서 고마움으로, 감사함으로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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