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의 은총
어릴 때 식사시간에 밥 한 알을 그릇에 남기거나 그것을 흘리고 먹게 될 때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던 경험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가을 들판에 벼이삭을 줍는 일이 그랬고, 무밭에 띄엄띄엄 남아있는 무를 남김없이 거두는 것도 그랬고, 고추밭에 떨어진 고추 몇 개라도 남기지 않고 거두었던 것이 그랬다. 그런 것들은 하나의 부스러기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귀히 여겼고 나에게 귀히 여겨야 할 것을 가르쳤다. 그것이 오늘 나의 목회에 얼마나 소중한 교훈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어머니가 그 딸을 고치기 위하여 예수님에게로 와서 고쳐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는 참으로 가혹한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엎드려 간청을 했다. 이 여인의 마음자리를 보신 예수님은 감동하시면서 여인의 딸의 병을 고쳐주셨다. 이것이 곧 ‘부스러기의 은총’이다.
부스러기가 무엇인가? 사전적인 부스러기는 조각들이다. 그것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십 원은 돈에 있어서 작은 부스러기다. 작은 물방울들은 강물에 비하면 부스러기다. 1분은 하루에 비하면 부스러기고, 하루는 1년에 비하면 부스러기다. 벳세다 언덕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는 군중들의 식사로 볼 때 부스러기다. 중요한 것은 그 부스러기들이 모여서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성경에서 뜻하는 부스러기는 연약한 것을 의미하는 깊은 뜻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연약한 것이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을 때 큰 역사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내게 있는 것은 작지만 나 보다 작은 자에게 내게 있는 것을 나눌 때 그것은 거룩한 부스러기가 된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가난한자들에게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부스러기가 된다. 그러나 자기 유익을 위해 이것저것 사용하다가 남는 것은 작은 자들을 아프게 하는 부끄러운 부스러기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사람을 크고, 반듯하고, 우수해야 하는 세상의 잣대로 본다면 인간 부스러기라는 말은 낙오자, 보잘것없는 것, 열등한 것, 쓸데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상대적으로 통칭하여 약하고 볼품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들이다. 속된말로 표현하면 부스러기는 말 그대로 먹고 남은 찌꺼기나 마찬가지인 가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스러기를 거두라고 하셨는데 축복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소한 것, 지나치기 쉬운 것,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 등은 부스러기 같지만 사실 그것들이 모여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부스러기의 은총이다.
주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무엇을 보고 부스러기의 은총을 베푸셨을까?
첫째는 낮은 자리의 마음, 곧 겸손이다. 둘째는 기도하는 마음, 곧 자신의 문제의 답이 주님에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절망하지 않는 마음, 곧 어떤 모욕도 수용하는 마음이다. 넷째는 확신하는 마음, 곧 반드시 주님은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이다. 이것이 부스러기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다.
나는 인간 부스러기였다. 어릴 때는 배고파서 그랬고, 청년의 때는 병들어서 그랬다. 신학교 기숙사에서 연탄 한 장 없어 냉방에서 잠을 지새울 때도 그랬고, 국수 한 다발로 하루를 견뎌야 했던 날들, 아무도 내 곁에 없는 허허벌판에 홀로 선 듯 힘들고 외롭고 아플 때 나는 더욱 인간 부스러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주님이 나를 어루만지시며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창녀는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있어서 부스러기였고, 나병환자는 건강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스러기였고, 세리는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쓸모없는 부스러기였지만 나는 그 여인을, 그 환자를, 그 세리를 사랑했단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그 때서야 주님이 부스러기를 귀히 여기시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1장 27-28절에서 바울을 통해 말씀하시는 부스러기의 은총이다. 곧 세상의 미련한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사 존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는 부스러기일지라도 예수님이 귀히 여겨 사용하실 때 지혜롭고 강하고 귀하고 존귀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부스러기의 은총을 입게 된다. 보잘 것 없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 주님은 은총을 베푸신다. 그것이 부스러기 은총이다.
나는 인간 부스러기였다. 그런데 주님의 부스러기 은총을 입었다. 그래서 나의 지금은 배고픈 사람에게 먹일 수 있고, 병든 사람을 돌봐 줄 수 있고, 버림받은 사람을 찾아 품어 안을 수 있고,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을 손잡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언제나 부스러기라는 존재의식으로 부스러기 은총을 노래하면서 부스러기를 귀히 여기면서 사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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