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임중 목사의 칼럼

좋은 장로님 때문에
전도인 생활로 시작한 나의 목회는 올해로 33년을 맞는다. 노회에서 전도사 시취(試取)도 못한 상태에서 부름을 받고 첫 담임목회를 시작하였던 안동 소호리교회에서 지금은 천국에 계신 이언복 장로님을 만났다. 이언복 장로님은 나의 오늘이 있게 된 목회 시작의 기초를 다듬어 주신 아버지였다. 맏아들이 나와 동갑이었으니 강단에서는 주의 종이었으나 강단 아래에서는 아버지였고 아들이었다. 당시 장로님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자리매김을 하신 분이었는데 철없는 전도사의 목회를 곁에서 지켜보노라면 속이 탈 일들이 많았겠지만 그 때마다 마음껏 해보라는 듯 그냥 따라만 주셨다. 지나고 나니 시행착오가 드러나면서 내 자신의 목회 부족을 느낄 때 조용히 마주앉아 이렇고 저렇고 선후상황을 설명하시면서 지금의 시행착오를 참고하면 다음은 더 좋은 목회가 될 것이라고 늘 일러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부자지정(父子之情)으로 교회를 섬겼다.
포항 중앙교회에 부임한 얼마 후 그 부인 이영자 권사님이 칠순 생신을 맞게 되어 이 못난 목사가 그리워 포항에 오셔서 칠순 생신 아침을 포항에서 맞게 되었다. 아들 딸 5남매가 처처에서 훌륭하게 되어 잘 살고 있고, 막내딸이 프랑스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칠순 여행을 아들 딸 가족 모두 프랑스에 가기로 계획을 세워놓고 정작 “칠순 생신은 서목사에게 축복 받고 싶다”고 올라오신 그 사랑을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도록 고맙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추억이다. 젊은 전도사의 초임 목회가 왜 문제가 없겠는가. 하지만 장로님은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으로 7년을 하루같이 행복하고 평안한 목회를 하도록 울타리를 잘 쳐 주셨다.
교회 부임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주일 설교 중에 장로님이 설교를 듣지 않고 재정 장부를 펴 놓고 살피고 있었다. 그 날 제직회가 있는 날이었기에 미리 살펴본다고 예배 시간, 그것도 설교 시간에 장부 넘기는 소리가 무척 신경이 쓰였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설교를 중단하고 “장로님 지금 무엇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버릇없어서 되겠습니까?”라고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순간 예배 분위기가 찬물 끼얹은 듯 했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교인들은 “이제 전도사님 목회 끝났다. 호랑이 같은 장로님 성질 건드려 놓았느니 견딜 재간이 없게 되었다”라고 걱정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렇게 설교가 끝나고 광고 시간이 되었는데 광고하러 나오시는 장로님의 얼굴이 하얗게 굳은 상태였기에 교인들은 숨을 죽이고 장로님의 언행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펴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마이크를 잡은 장로님은 “여러분 오늘 제가 하나님 앞에, 여러분 앞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는 회개를 했으니 용서하실 줄 믿고 전도사님과 여러분에게 용서를 구하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하면서 그만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린 것이다. 상상외로 전개된 상황에 온 교인들이 함께 울었고 돌발 상황에 당황한 나는 아래 강단으로 내려가서 “장로님 미안합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할 때 장로님은 나를 끌어안고 그냥 엉엉 우셨다. 그리고 그 이후의 교인들이 장로님을 대하는 태도는 전날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다.
7년을 목회하는 동안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챙기듯 젊은 전도사의 실수도 감싸주고 허물도 덮어 주면서 모자람 투성이 젊은 전도사를 성숙시켜 주시면서 단 한 번도 상처 될 말씀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교회를 섬겼던 장로님이었다.
그와 같은 목회동역이 교회를 부흥케 하여 총회로부터 농어촌교회 모범사례 발표를 하게 되는 참 행복하고 부흥하는 시골교회가 되었다. 그렇지만 교인들이 도시로 하나 둘 나가면서 시골교회의 한계를 벗지 못하여 교회가 어려우면 전도사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시골교회는 못자리판입니다. 우리교회 같은 시골교회 때문에 도시교회가 부흥한다고 생각하고 위로 받고 즐겁게 목회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 “소호리교회 전도사로 만족하지 말고 한국교회, 세계교회의 목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니 열심히 공부를 하여 훌륭한 목사가 되어 한국교회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라고 강조하시면서 공부하는 뒷바라지를 어려움 없이 감당해 주셨던 장로님이었다.
모자람 투성이 전도사 시절에서 오늘 포항중앙교회를 담임하는 여기까지의 내 모습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허물투성이 부족함뿐이었던 나를 좋은 목사가 되게 사랑으로 다듬어 주신 좋은 장로님 때문임을 나는 잘 안다.
지금도 아무것도 내 세울 것 없는 참으로 미련하고 부족한 종이지만 이만큼이라도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역할 수 있는 나의 목회의 시작에는 이언복 장로님의 사랑이 있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목사를 행복하고 평안하게 사역하도록 사랑으로 울타리 쳐 주시는 포항중앙교회 장로님들의 배려와 관용과 사랑의 목회 동행을 새삼 되새겨 보면서 오늘도 좋은 장로님들 때문에 못난 목사는 좋은 목사가 되어져 가고 있음을 감사한다.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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