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길이
오래전 제가 고등부, 한 해 선배가 중등부 지도교사로 섬길 때였습니다. 누구나 불만이 있으면 직접이 아니라 간접으로 전달하듯이 그 선배에 대한 불만이 제게 전해졌습니다. 설교가 너무 길다는 겁니다. 신학 공부도 하지 않은 완전 아마추어 설교자가 40분, 50분, 때로는 한 시간씩 설교를 해대니 아이들이 듣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불만을 그 선배도 듣고 제게 와서 하소연을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시키시는데 날더러 어떡하란 말이야?” 하나님이 그렇게 길게 시키신다는데 누가 감히.. 맞는 말이긴 한데 왠지 의심이 갔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는 건지, 정말 하나님이 시키시는 건지 헷갈렸습니다.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즉흥적 스타일로 설교할 때가 많았습니다. 자연히 설교도 길었습니다. 어느날 성도 한 분이 제 설교에 불만 있는 사람이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사실은 자기의 불만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어서 말해준 겁니다. 내용인즉슨, 설교의 결론 부분에서 했던 말을 자꾸 한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저는 그때 결론을 집어 넣어주려고 애를 썼으니까요. 그러니 했던 말을 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불만을 전해 들은 다음부터는 했던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설교가 짧아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독일인 가족들을 위하여 동시통역을 시작했고 통역자를 위해서 원고를 백퍼센트 적어야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286 컴퓨터도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원고 설교를 하고 있으며 설교 시간도 25분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다른 건 몰라도 담임목사의 설교가 간단명료해서 좋다고들 하십니다.
몇 년전 부산 어느 교회에서 집회 인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 부목사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교회 담임목사님의 대예배 설교는 17분이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나보다 더 짧은 분이~! 이런 강적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그보다 두 배 이상 되는 설교를 하면서도 교회를 침체시키는데 그분은 그 짧은 시간에 그런 좋은 교회로 키워가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17분이면 핵심은 다 전달할 수 있긴 합니다. 저도 무슨 행사에 가면 15분 이하니까요. 그래도 대예배 설교 17분은 감탄을 자아낼 만합니다.
분명한 것은 설교는 길이보다는 질입니다. 질만 좋으면 한 시간이 되든 두 시간이 되든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졸리는 설교를 길게 하는 게 문제입니다. 지루한 설교는 짧게라도 하는 것이 청중에 대한 배려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설교의 길이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질의 문제를 애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설교가 길다, 설교 수준이 높아서 이해하기 힘들다 라고 말할 때 목사는 빨리 그 진의를 눈치 채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설교가 짧다, 설교 수준이 낮다의 반대말이 아니니까요.
설교자로서 좋은 설교를 해야 된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좋은 설교를 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수십년동안 수천번의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달인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것, 그것이 설교입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인사를 할 때도 부끄러워 숨고 싶은 것이 설교입니다. 다른 이들의 설교에 대해서는 해 줄 말이 많지만 정작 나 자신은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 설교입니다. 풍성한 추수의 계절에 풍성한 영적 추수를 하지 못하는 설교자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 우리의 설교에도 풍성한 추수가 있었으면, 설교의 길이보다는 설교의 질이 고급스러워지는 가을이 되었으면, 넓은 들에 고개를 숙이는 누런 벼이삭을 보면서 부끄러워지는 요즘입니다. 설교 잘 안 되는 목회자들을 성도들은 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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