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렬 목사의 목회자 칼럼

선행의 이중성
교장으로 은퇴한 이후에도 근검절약으로 재산을 모았다. 4억이 넘는 거금을 약자를 위한 좋은 일에 기부하기로 결심했으나 함께 고생한 아내는 치매로 입원하였다. 아이로 돌아간 아내를 붙들고 오열하는 늙은 교장은 선한 일을 하자고 함께 한 약속을 같이 지키자고 신음으로 소리쳤지만 가물가물한 정신에 그리고 아이로 돌아간 아내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외로운 노인에게 선함과 삶이 무엇인지, 허망함의 절규는 또 다른 고통의 신음소리처럼 들린다. 자신도 더 늙기 전에, 아직 남아 있는 정신마저 희미하여지기 전에 수탁할 곳에 들러 다시금 탄식을 쏟는다. 늙어서 선한 일에 사용하자며 힘들게 모으며 살아왔지 않았느냐고 함께 있지도 않은 아내가 마치 곁에 있는 양, 정신을 차리라는 한 땀 한 땀 쏟는 말에 인생의 처절함이 묻어난다.
전쟁 통에 이북에서 내려와 험한 세상을 살아온 한 여인이 있었다. 남편도 자식도 그 험한 세상에서 다 잃고 홀로 남아 그저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살아왔다. 갈 곳도 없었고 피붙이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시장 바닥을 누비며 살아왔다. 해보지 않은 장사가 없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콩나물 국밥 장사를 하여 꽤 돈을 모았다. 집을 사고 점포를 사다 보니 이제 10억대의 재산을 이뤘다. 그런데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정신도 오락가락함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하니 재산이었다. 더 늙기 전에, 정확하게는 죽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노인은 노구를 이끌고 대학을 찾았다. 학교 문턱도 가지 못한 그래서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해야 하겠다 싶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사용하고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학교는 여사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 곁에 이처럼 선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선행에 흠집을 내고자 함은 절대 아님을 먼저 전제하고,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마음에 이중성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그 자아의 내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중성이 있다는 것이다. 콩나물을 팔 때 한 가닥이라도 더 적게 주어 이윤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살만해졌을 때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 예전의 자신처럼 힘들게 사는 이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함으로 풀어헤치지 못했을까? 가까운 사람들에게 지독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성장을 이룰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기에 하는 말이다.
여야가 민간인 사찰을 문제 삼아 서로의 도덕성을 조준하여 난타전의 공방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상대방 눈의 티가 있다면 자신의 눈에는 들보가 있음이, 인간이라면 지리한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저들의 정치 놀이를 지켜보는 심판자인 유권자의 입장에서 더욱 성숙한 한 표의 사용은 어떤 말의 휘둘림이 아니라 인간의 이중성에 고뇌하는 사람으로서 행사해야 한다. 바로 자신의 이중성 때문에 이 곤고한 몸에서 누가 건져 내랴며 바울은 탄식했다. 마틴 루터는 수도원의 골방에서 자신의 죄 때문에 졸도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런던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상을 돌며 수습 진료하던 중 말씀 선포의 사역자로 부름을 받고 고뇌하였다. 그가 불과 한 달 만에 10Kg의 몸무게로 줄어들 정도였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虎父犬子(호부견자) 즉 호랑이 같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개 같은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주의 자녀들의 이중성, 이름답게 살지 못함에 몸부림쳐야겠는데 나부터 입의 말 뿐이다. 그래서 글로 말한다고 “에라, 인간아” 절필해야 함에도 글 같지 않은 글을 끌쩍이고 있으니 이중성의 사람은 바로 나다. 선행을 행할지라도, 부활의 주께 희망을 건다.

201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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