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일종이 땡땡땡
뒤 돌아 보는 세월은 아름답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낙엽이 딩굴기 시작하면 거리는 성탄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거리의 바람이 옷깃을 스쳐도 성탄의 서정은 겨울 햇살처럼 따스하다. 수천개의 전구로 수놓은 상가보다 눈덮힌 촌락을 오가며 불렀던 성탄의 노래는 눈부시게 우리 마음을 비추어 준다.
성탄의 계절에 부르는 노래 중에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노래가 있다면 그것은 ‘탄일종’(誕日鐘)일 것이다. 지금은 우리 귀전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이 노래만큼 사랑받았던 노래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노래를 부르며 주일학교를 다녔고, 이 노래로 한 겨울을 지냈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부드럽게 들린다
주 사랑하는 아이 복을 주시려고
탄일종이 울린다
비록 50여년이 지났으나 경상도 산골 예배당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혹한의 새벽을 마다않고 새벽송을 돌며 불렀던 이 노래는 잊혀진 세월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근원과 연원을 밝히는 것이 나의 취미가 아니던가?
결혼부터 말한다면 이 노래를 작시한 이는 최봉춘(崔逢春, 1917-1998) 여사였고, 곡을 붙인이는 그의 남편 장수철(張壽哲, 1917-1966) 박사였다. 이 노래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때는 1952년이었다. 한국기독교 아동교육연구회가 1953년 출판한 <어린이 찬송가> 82장에 편집되어 있던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것은 아동문학가 오소운에 의하면 <크리쓰마쓰 노래 39곡집>이었다고 한다. 이 책이 출판된 때가 1952년이었으니, ‘탄일종’이 탄생한지 60년이 되는 샘이다. 그러나 이 노래가 작곡된 때는 이보다 앞설 수 있다. 장수철 박사는 강릉 사범학교(1946-48)와 서울 정신여자중고등학교(1948-1950?)에서 음악교사로 일했는데, 따님의 증언에 의하면 이 노래가 지어진 때는 강릉 사범학교 시절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최봉춘과 장수철은 월남한 인물이다. 황해도 황주 출신인 최봉춘은 황해도 수안군청, 봉산군청 등에서 교화 주사(主事)로 일하다가 젊은 음악인 장수철을 만났고 이들은 부부가 되었다. 평양출신인 장수철은 평양의 교회 장로의 손자로 태어났는데 한국교회 음악에 큰 자취를 남긴 박재훈과 평양 요한학교 동창이었다. 음악을 사랑했던 장수철은 동경고등음악학교 작곡과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해방 후 장수철 선생은 서울 초동교회 찬양대 지휘자였는데, 이때는 담임목사의 설교에 맞추어 주 매주일 새로운 노래를 작곡하여 가르치고 지휘했다고 한다. 이때가 작곡가로서 가장 왕성한 시기였을 것이다. 6.25전란의 와중에서 작곡한 노래들이 소실 된 것을 가장 가슴아파했다고 했다. 어떤이는, 장수철 부부가 1.4후퇴 때 필사적인 각오로 월남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6.25전란의 혼란 속에서 부산으로 대구로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으나 장수철 선생 부부는 서울에 정착하고 살았다.
후에는 새문안교회에 출석하면서 작곡가로 활동했다. 탄일종을 작곡한 것은 이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사는 최봉춘 역사가 고향에서의 성탄절을 보냈던 날을 회상하던 중 이 노랫말을 쓰게 되었고, 남편은 곡을 붙였다. 서울 정신여고 음악교사 일하고 있을 때로 추정된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는 혼란한 와중에서도 주님의 오심은 평화였다. 이 노래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단순한 멜로디에 경쾌한 이 노래는 전쟁에 지친 아이들에게는 위안의 노래였다. 이 노래는 외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여 10여개 국으로 소개되었다.
부인 최봉춘이 가사를 쓰고 남편 장수철이 곡을 붙인 또 한곡이 1956년에 발표된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 또한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그 외에도 장수철은 황금찬이 노랫말을 쓴 ‘은행잎’을 작곡했고, ‘보슬비’(함처식 요), ‘가을맞이’(윤춘병 요) 등을 작곡했다. 1964년 당시 최봉춘은 새문안교회 찬양대 알토파트대원이었고, 남편은 곽상수에 이어 새문안 교회 성가대지휘자였다. 동요작곡가인 장수철 선생은 서울의 중앙신학교에서 공부했고, 후에는 미국 무디성서학교 종교음악과, 시카고 아메리칸음악학교에서 수학했고, 킹즈대학에서는 음악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1960년 8월에는 선명회 합창단을 창단하였다. 이때부터 지휘자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선명회 합창단을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어린이 합창단으로 육성하였고, 빈소년합창단이나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에 비견할 만한 합창단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선명회 합창단은 미국의 카네기홀, 캐나다의 로이톰슨홀, 호주의 오페라하우스,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오페라 극장, 일본의 산토리홀, 한국의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 세계 각국의 권위 있는 연주홀에서 연주한 바 있다. 세계적인 리릭소프라노 홍혜경과 카운터 테너 이동규 같은 음악인이 선명회 합창단 출신이었다. 선명회 합창단은 지금은 월드비전 합창단으로 개칭되었다. 총망 받던 작곡자이자 지휘자였던 장수철 박사는 안타깝게도 1966년 50세의 나이로 간경화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선명회 합창단을 지휘할 때 하루 일곱차례 공연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과로가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인 최봉춘집사는 1998년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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