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과 지겨움
오늘날의 시대는 금세 지루함을 나타내는 시대이기도 하고, 특별한 것을 찾는 시대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지프차를 타고 아프리카의 세렝게티를 횡단한다고 하자. 이곳을 지나면서 수많은 사자, 기린, 표범 등의 동물들을 보고 있다. 말로만 듣던 수백마리의 사자들이 있는 그림 같은 광경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놀라운 광경에 정신이 휘황하여 찬사를 보낼 것이다. “아! 정말 놀랍고 기가 막히다.” 그런데 계속 차를 타고 가다보면 그 장엄한 광경들은 익숙해지고 별것 아닌 것 같고 지루해지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새로 나타난 동물들은 아까 본 것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깊이 살펴보면 더 놀라운 것들이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냥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는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지금까지의 사람들의 삶이 늘 그랬다. 처음에는 놀라움으로 시작하지만 조금 후엔 지루함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생활 40년 동안 처음 ‘만나’를 보았을 때는 놀라움이었으나 계속 똑같은 것이 내리자 지겨워했다. 이처럼 TV나 핸드폰을 처음 보았을 때 또한 놀라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더 특별한 것들로 인해 예전의 것들이 하찮고 지루한 것들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다 놀라움이지만 조금 후에는 지루함이 돼 버린다. 모든 것이 이런 흐름을 따라가면서 진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옛날과 비교했을 때 지금은 좋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왜 삶은 지루해지고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계속 놀라워 하고 지루해 하고 또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또 놀라고 지루해 하고 또 새로운 것을 찾으면서 지쳐갈 것이다. 우리는 진짜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지루해지지 않도록 특별한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진짜를 잃지 않으면서 흥미도 가질 수 있을까? 흥미로움이 생기든, 지루함이 생기든 겉만 슬쩍 보지 말고 실제의 삶에 깊이 빠져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주 나는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읽었다. 1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이며, 그의 죽음 직후에 출판되어 한국어초판이 15만권이 팔렸다고 해서 읽어보았다. 그는 한 가지 목표에 무섭게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돈보다 아이패드, 아이폰 등으로 인문학과 기술을 모두 포함하는 디지털 허브 제품을 만들고, 자신이 사라져도 영속하는 회사를 만들려는 열정, 특히 하나의 프로젝트가 있으면 가장 먼저 뛰어난 사람을 찾는 모습과 하나의 디자인에 기술과 영성과 시대의 흐름과 사람에 대한 관심 등 모든 것을 넣으려고 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완벽하게 만들려는 완벽성이 놀라웠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나 기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쓰레기’와 ‘머저리’라 하는 괴팍함을 갖고 있었으며, 채식주의자여서 냄새나도 목욕을 하지 않고, 신발을 신지 않는 등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제품에 대한 열정은 놀라웠으나 한사람의 인간으로 보았을 때는 ‘뭐 이런 형편없는 인간이 다 있나?’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스티브 잡스의 책을 읽는데 중간정도에 이르니 그만 읽고 싶은 마음, 대충 읽고 싶은 마음, 중간은 읽지 않고 빨리 마지막을 읽고 ‘다 읽었다’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그러나 참고 견디며 끝까지 읽었다. 그러다 그의 죽음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가슴 벅찬 놀라움이 느껴져 눈물이 나왔다. 그는 마지막에야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 아내와 아들,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고 말기 암의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제품과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면서 죽음도 넘어서는 자기 삶에 대한 일관성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렇듯 삶이란 끝까지 가보면 다 좋은 것이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처음 보는 놀라움도 좋은 것이고, 중간에 느끼는 지겨움도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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