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를 육성하자
오래 전 목회자 세미나 강사로 헌신하던 어느 날 커피타임 시간에 후배 목사님 한분이 다가왔다. 그리고 조금은 당황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 저 좀 키워 주십시오. 저 잘 클 수 있는 면면을 갖추었습니다” 나는 생각도 없이 대답을 했다. “나는 사람을 키울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특히 목회자는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이지 사람이 키운다고 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더니 금방 상기된 얼굴로 반문을 했다. “우리교단이,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어두운지 아십니까? 사람 안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목사님도 목사님 시절만 그렇게 혼자 누리시지 마시고 저희 같은 후배들을 키워 보십시오. 한 세월 간 후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오늘까지 누린다는 마음도 누려본 시간도 없는데 무엇을 누리는지? 그리고 다음 날을 위해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더더욱 내 삶의 방식이 아니니 어쩌지?” “그럼 사제지간(師弟之間)이란 말은 왜 있습니까? 스승이 제자를 키우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가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지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師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이, 그래도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에서 목사님을 강사로 초청하는데 시간이 없어 못 가시면 저를 추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오랫동안 이 짧은 대화가 머리에서 아니,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물론 그 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의 “한 세월 간 후 외롭지 않다.”는 말이 개운치 않았다. 그 분의 어의(語意)가 사람을 키우는 목적이 상호 득(得)을 위한 것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공리주의의 생각이었다면 나는 그 분을 안아주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해 사람을 키우고 누구를 위해 키움을 받는가? 이에 대한 정념(正念)이 정립되지 않으면 키움은 아무 의미도 없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신의 득(得)만을 위해 키우지만은 않는다. 특히 사람을 자신의 노후나 자신이 힘없을 때 도움의 방편으로 키우는 것은 가장 추하고 몹쓸 양육개념이다. 나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는 삶’이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진정한 가치개념을 소유하게 되며 살맛나는 인생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그렇게 사람 살맛이 나는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셨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을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그 때 그 분이 말한 ‘키움’은 ‘상호 득(得)’의 개념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다음 세대를 키워야 한다’는 말만큼은 백번 옳다. 그리고 돌아보면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사람을 키우는 일에 인색했다는 자성(自省)을 하게 된다. 언제 부터인가 한국교회는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는 말이 많아지고 있다. 그것은 앞을 바라보는 역사의식과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명의식의 부재에서 오는 현상이다. 소명과 사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무디어지면 사회는 카오스의 현상이 도래하고 인간의 정신과 가치개념은 찾을 길이 없게 된다. 그러고 보면 그 때 그 분과의 대화에서 정신이 번쩍 드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사람을 키우자는 것이다.
나침반(羅針盤, compass)은 선박이나 항공기의 침로(針路)를 정하고, 방위를 측정하기 위한 계측기이다. 그것은 비단 배나 비행기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나침반은 인생 여정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삶의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가 나침반의 역할과 내용의 중요성에 대한 가치개념을 혼돈하고 있다는 느낌은 비단 필자 한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의 항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돈이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식, 권력, 혹은 명예라고 생각들을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여정에서 침몰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잘못된 나침반 때문이다.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도 명확하게 보았다. 한국교회가 물질과 명예와 권력지향의 나침반으로 세상을 항해하고 있다는 우려는 한 두 사람의 기우(杞憂)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변화를 싫어한다면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닭은 닭의 생각을 갖고 있고 봉은 봉의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그 자신의 장래를 결정한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들처럼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남과 다르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역사의 성공자로 살았고 또한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새로운 사명의식이 필요하다. 나의 명예와 권력과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지향했던 태도를 바꾸어,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결단과 행동철학이 필요하다. 일선에서 달음질하는 것도 귀하지만 후선에서 격려하고 힘을 돋우어주는 것은 더욱 귀하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철학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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