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切磋琢磨)의 목회
교육공무원 7여년을 마감하고 서른다섯에 신학을 시작하여 나이 40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된 그 날 아침, 아버지가 필자를 방으로 불러 앉히고 깨우친 말씀이 있다. “농심(農心)으로 목회하고 통감(通鑑)의 지혜로 사역하여라.”
그렇게 출발한 나의 목회는 어느덧 강산이 세 번 변할 만큼의 세월을 달려오고 있다. 지방에서 8천여 명의 교회를 담임하게 된 지금,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그 걸음걸음마다 오직 임마누엘과 여호와 이레의 은총뿐이었음에 감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 자신에 대해서는 ‘설익은 풋과일 같은 목사’라는 생각을 어느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다.
목회자의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나눔과 베풂이 있는 따뜻한 가슴으로 감격하는 목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함축하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목회’이다. 자르고 갈고 쪼고 닦음이 절차탁마다. 인격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목회에 필요한 교훈이라 생각되어 나는 그것을 목회 철학으로 삼았다.
그런데 목회 현장에 들어가면 어디 그것이 이론처럼 되는가? 그야말로 이상과 현실이 너무도 다른 것이 목회 현장이다. 철없이 시작되었던 전도사 시절에도 그랬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목회 현장에는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로 인한 아픔과 고뇌가 가셔지지 않음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목회현장에서 깨닫게 된 것이 절차탁마의 목회다. 절차탁마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목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는 통감(通鑑)의 목회다.
통감이란 역사란 말인데, 역사(歷史)는 지나온 사실(史實)을 기록한 것인 반면, 통감은 지나온 사실을 오늘의 거울에 반사시켜 내일을 조명하는 뜻 깊은 단어다. 어제의 역사를 보지 못하면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통감의 지혜가 목회현장에 요구된다. 그래서 목회는 통관(通觀)이 되어야 목회다운 목회가 가능한 것이다. 대강 훑어보는 것을 개관(槪觀)이라 하고, 바로 보는 것을 정관(正觀)이라 하고, 깊이 살펴보는 것을 정관(靜觀)이라 한다. 크게 보는 것을 대관(大觀)이라 하고 전체를 보는 것을 통관(通觀)이라 한다. 여기에 이를 때 비로소 목회의 기경(起耕)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농심(農心)의 목회다.
한해의 농사를 위한 ‘기경(起耕)’과 ‘씨 뿌림’과 ‘가꿈’과 ‘거둠’을 함축하고 있는 용어가 농심이다. 가을의 거둠을 위해 일 년 내내 수고의 땀을 흘린 경험이 없으면 거둠의 감동과 행복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그와 같은 농부의 심정으로 목회를 할 때, 그 목회 현장은 참으로 윤택해지고 아름다움이 열매 맺게 된다. 그 아름다움은 거둠의 시간까지 말할 수 없는 땀과 수고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기경하는 때로 시작되어 씨 뿌림과 가꿈, 그것이 농심의 목회다.
셋째는 예심(藝心)의 목회다.
농심을 씨 뿌림이라 하면 예심은 ‘가꿈’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목사의 마음이 예술가의 심정이 되는 목회다. 예심의 목회 현장은 정말 아름답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드러나는 목회가 바로 예심의 목회다. 별 볼 품 없어 보이는 돌 하나로 걸작을 만들어내고, 남들이 버린 것들을 주워 기막힌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다. 다양한 화선지에 그림과 글씨를 통해 명작이 되게 하는 화가의 마음으로, 교인 하나 하나를 거룩한 성도로 만들어 가는 목회를 예심목회라 한다.
넷째는 시심(施心)의 목회다.
목회의 기본 틀은 나눔이고 베풂이다. 그것은 구체적 개념의 예수님 사역이다. 작은 자들을 볼아 보고, 병든 자를 치유해 주며, 소외당한 자들을 찾아 품어주고, 아파하는 자들을 어루만지신 예수님의 사역이 시심의 사역이다. 오늘 목회 현장에서 그것은 전도이며 구제이며 봉사다. 여기서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이 연출되는 복음의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보시(布施)라 한다. 보시는 진리를 주는 법시(法施), 물질로 나누는 재시(財施),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주는 무외시(無畏施)로 구분된다. 그것이 불교의 시심(施心)이다. 모든 종교는 시심으로 종교 활동을 한다. 그것이 사역의 실천 덕목이 된다. 시심은 성령님의 마음이다. 그것은 낮아질 수 있어야, 겸손함이 있어야, 사랑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시심(施心)의 목회를 통해 진정한 거둠의 기쁨을 누린다. 오늘도 나는 절차탁마의 목회를 통해 목회 현장을 가꾸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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