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태 목사의 목회자 칼럼

자서전을 고쳐 쓸 때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만약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사회나 국가에 기여한 사람이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전기’가 쓰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좀 덜 유명해도 요즘은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쓸 수 있는 시대라서 자기 히스토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서전이라는 형식으로 알리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이전 같았으면 감히(?)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에는 그 삶의 족적이 일천한 사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자서전을 써서 그 책들을 지인들에게 돌립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선거철에는 더욱 많은 자서전들을 필자도 받고 있습니다. 자서전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삶의 이력들을 자랑삼아 남에게 알릴 수 있는 그 배짱들이 좀 부럽다고나 할까요?
이전에 둘째 아들이 미국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미래의 자서전 쓰기가 숙제인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70세가 되었을 때를 가정하여 그 시점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 형식으로 미리 써보는 자서전이었습니다. 그 자서전을 잠시 들여다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는 변호사로 상당한 명성을 날리다가 은퇴하는 것으로 썼고, 그의 아버지인 필자는 75세에 죽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꽤 괜찮은 숙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조금 더 오래 살도록 했으면....하는 아쉬움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사람은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삽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 목표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도 감수합니다. 다시 말해 미래의 자서전을 미리 써서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며 사는 것이 인생일 것입니다. 훗날 만약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지금 미리 써 본 자서전과는 얼마나 다를까요? 내가 미리 써보는 가장 최선의 모습을 담은 자서전과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사용한 후 돌아보는 회고가 같을 수록 잘 산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좋은 계획을 세우며 큰 비젼을 품는 것도 멋있지만 그 꿈을 다 이루고 난 후 지나온 날들을 감사함으로 회고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멋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내가 미리 그리지 않았던 그림들을 갑작스레 그려야 하기도합니다. 나의 미래의 일기장에 쓰지 않았던 내용을 어쩔 수 없이 써내려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낙심하고, 좌절하며, 그리고 자포자기 하기도 합니다. 금번 천안함 희생자 유족 중 특히 남겨진 부인들은 그들이 함께 꿈꾸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미래의 일기장을 다시 써야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미 찢어지고 뭉개져져린 그 미래의 자서전에 아무것도 고쳐서 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계획은 하지만 그 계획의 성취여부는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결코 그것을 이룰 수 없음은 상식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하더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일어나고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미래도 매우 가변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께 우리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 맡기는 삶이 더욱 절실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장 아름다운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201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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