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남쪽의 송(宋)나라와 북쪽의 위(魏)나라가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위나라가 송나라를 정복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단도제라는 인물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단도제는 병법에도 능했을 뿐 아니라 관우와 장비의 용력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런데 단도제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면서 송나라에서도 불만을 품은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권욕에 불타는 권신(權臣)들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왕족들 중에는 그가 나라를 넘보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권신들이 왕이 병든 틈을 타서 단도제를 궁중으로 불러들인 다음 천자의 명이라고 속여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소인들의 꾀에 속아 잡힌 것을 안 단도제는 분을 참지 못하고 냉수를 청해 한 말이나 들이킨 후 머리에 쓰고 있던 건(巾)을 내던지며 이렇게 외쳤다.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너희의 만리장성을 스스로 허문단 말이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위나라 사람들은 ‘이제 송나라에 두려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며 해마다 송나라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BBC방송, 중국 신화통신 등 세계 주요 언론이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상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회의원들의 물리적 충돌 사태를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했다. 해머를 들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에 들어가려는 야당 측과 소화기를 뿌리며 이를 저지하려는 여당 관계자들의 몸싸움 장면을 소개하며 ‘한국 스타일의 정치(Politics, South-Korea Style)‘라는 부제를 달았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많은 나라들이 허리띠를 조르고, 머리를 맞댄 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저마다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법들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 아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년 경제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해결책을 내놓기 보다는 한쪽에서는 해머, 다른 한쪽에서는 소화기를 들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쳐봐야’ 소용없는 법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 아래서 어떤 대책을 내놓는가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도 문제 해결에 앞장 서야할 국회의원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싸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이라고 외쳤던 단도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국가적인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내분에 휩싸여 자멸했던 많은 역사적인 실례들을 알고 있다. 외부에서 침입해오는 적보다 무서운 것은 내부에 있는 적이다. 모든 국민이 정신 차리고 하나 되지 못하면 외부의 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때때로 교회 안에서도 다툼과 분쟁이 있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저마다 이유들로 분쟁이 생기고 성도들이 편을 나누어 싸운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많은 성도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이런 실망스런 모습을 보며 많은 불신자들이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대부분 다툼은 문제 자체 때문이 아니라 상한 감정 때문에 일어나다. 작은 문제에서 비롯되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 상처가 되고, 상처가 터져 다툼이 일어난다. 한번 다툼이 시작되면 형제도 잊어버리고,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결국 ‘스스로 하나님의 교회를 허무는 자’가 되고 만다.
예수님은 다툼으로 가득 찬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셨다. 예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다툼의 벽을 허무신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허무셨고, 남자와 여자의 벽을 허무셨고, 주인과 종의 벽을 허무셨다. 벽을 허물어 모든 이들을 하나로 아우르시고, 사랑으로 하나 된 가족을 만드셨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비난과 정죄 보다는 이해와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땅만큼 낮아지심으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셨고 당신의 생명을 드려 속죄의 제물이 되심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 우리에게도 이런 이해와 희생의 정신을 필요하다. 상대방이 틀렸다고 속단하기 전에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상대방의 희생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내가 가진 것들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실천할 때 서로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지게 된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으로 하나 된 아름다운 공동체가 탄생하게 된다.
새롭게 시작하는 2009년,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질책을 다시 받아서는 안 된다. 반대로 교회를 세우고 나라를 세우는 해가 되어야 한다. 새해에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과 평화가 우리 가정과 교회를 넘어 온 나라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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