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
서 임 중 목사
포항중앙교회 담임
경안신학대학원 대학교 총장
매 주일 아침이면 강상운 원로장로님은 목양실을 방문하셔서 목사의 건강을 축복하며 문안하신다. 제대로 보필하지 못함이 늘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라도 목회를 도와 드리는 것이 장로의 할 일이 아니겠느냐 하시면서 꼭 한 두 장의 인쇄물을 건네주신다. 그것은 목회와 관련된, 설교에 도움이 될 참고 자료들이다. 그것을 참고하여 목회단상도 쓰고 설교에 적용하였던 아름다운 목회동역의 행복을 경험한다. 지난주일 아침에 강상운 장로님이 저에게 전해 주신 한 장의 종이에는 줄탁동시(?啄同時)라는 고사성어가 쓰여 있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어미 닭이 달걀을 품어 부화시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때 어미 닭이 달걀을 품어서 부화할 때가 되면 달걀속의 새끼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안에서 몸부림을 치는데 병아리는 나름대로 공략 부위를 정해 쪼기 시작하나 힘이 부치게 된다. 이것을 줄(?)이라 한다. 이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닭은 안에서 병아리가 쪼는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 부화를 도우는 것을 탁(啄)이라 하는데, 이렇게 줄(?)과 탁(啄)이 동시(同時)에 이루어져야 알이 깨어지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를 줄탁동시(?啄同時)라 한다. 줄(?)은 부르다, 부르짖다, 등의 뜻이고 탁(啄)은 쪼아서 연다, 쪼다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다른 말로는 줄탁동기(?啄同機), 줄탁지기(?啄知機)라고도 한다. 어느 교회이든 부흥하고 평안한 교회를 보면 목사와 장로의 줄탁동시의 신비로운 의미를 생활화하고 있음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나는 포항중앙교회를 담임하면서 더욱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누구보다 자기는 자신이 잘 아는 법이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모든 면에 부족하기만 한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래도 최선을 다해 거룩한 목표를 향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자 할 때 때때로 힘이 부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가히 몸부림을 하면서 ‘줄’(?)의 사역을 할 때 신기하게도 ‘탁’(啄)의 화합을 해 주시는 장로님이 계셔서 목회가 윤택해 지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한다. 때로는 교인들이 ‘줄’(?)할 때 목사가 ‘탁’(啄)해 주는 일이 동시에 일어날 때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들이 목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그것은 목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가르침이자 매력적인 이치가 줄탁동시다. 국태민안은 여야가 ‘줄탁동시’할 때 가능하고, 행복한 가정은 부부(夫婦)가 ‘줄탁동시’할 때 이루어지고, 훌륭한 인재는 사제(師弟)가 ‘줄탁동시’의 노력을 할 때 탄생하며, 세계적인 기업은 노사(勞使)가 ‘줄탁동시’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관계개념의 줄탁동시의 신비로운 변화의 체험을 위해서는 몇 가지 깊이 새겨야 할 묵상이 요구된다.
첫째는 줄(?)을 통해 ‘내가 먼저’라는 이치을 깨달아야 한다. 즉 받고 주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원리, 그것은 물질도 사랑도 섬김도 용서도 다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먼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줄(?)의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먼저 대접하고, 먼저 섬기고, 먼저 낮아지고, 먼저 용서하고 사랑을 줄의 철학을 가르쳤고 본을 보이셨던 것이다. 인간생활에서 넉넉함과 훈훈함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둘째는 탁(啄)을 통해 경청의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병아리가 안에서 어떤 부위를 공략하여 쪼고 있을 때 밖에서 어미 닭은 어느 부위인가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병아리의 쪼는 것을 잘 듣고 있어야 하듯 인간관계도 탁(啄)의 이치는 경청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들을 줄 알되 바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바로 들을 수 있는 것을 청(聽)이라 한다. 바로 들어야 바로 볼 수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 직관(直觀), 정관(靜觀), 통관(通觀), 달관(達觀)이 가능한 것이다.
셋째는 줄을 인지할 때 탁의 타이밍이다. 즉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배고플 때 밥 한 그릇, 목마를 때 물 한 사발, 추울 때 옷 한 벌, 넘어질 때 손잡아 주는 것, 즉, 어떤 것이 필요할 때 채움의 타이밍이 절실한 것이다. 안과 밖, 어두움과 밝음, 너와 나의 줄탁동시(?啄同時)를 통해 우리는 생명처럼 신비로운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요즘 정부나 여의도 1번지, 그리고 사회분위기나 학원, 더 나아가 종교 간의 다양한 불협화음을 보면서 줄탁동시의 아름다움이 연출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거룩한 공동체로 자리매김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인 교회에서 줄탁동시가 이루어질 때 이산과 저산이 마주쳐 울려 주 예수 은총을 찬송하는 영광이 충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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