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임중칼럼 - 아름다운 은퇴

서임중 목사. 포항중앙교회 담임
언제나 그렇지만 국내외 부흥 사경회를 인도하면서 경험되는 희비의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을 새삼 통감(通鑑)하게 된다. 공직사회는 법이 정한 울타리 안에서 어떤 경우도 예외 없이 법리에 의한 은퇴의 자연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는데 교회는 종종 은퇴와 관련하여 씁쓸한 이야기들이 사건화 되는 경우를 듣고 보면서 무엇보다 오늘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 아름다운 은퇴가 생의 면류관이 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에 충실’이라는 참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간과하기에 삶의 마무리 또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되는 것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영화가 상영된 후 이 말은 우리 사회에 많이 회자되는 용어가 되었다. 그것은 영화 제목이었지만 일상에서의 삶을 보다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경우를 일컬어 상용되었다. 즉 잘나갈 때 내려놓을 줄 아는 ‘절제와 포기의 미학’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남은 자들은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쉽게 적용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보아왔다. 쉽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 황금기에 멈추란 말인가?”라고 항변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아니면 자신의 미래를 보다 아름답게 꿈꾸는 사람이어야 ‘아름다운 은퇴’라는 말이 통용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박수는 커녕 비난과 야유가 훤화할 지라도 자신의 현재에 대한 미련 때문에 쉽게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비난하고 야유하는 사람들이 정신이상자로 느껴지고 급기야 그 자리에 더욱 연연하려고 몸부림 하다가 쌓아온 업적마저 물거품이 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우리 정치역사에서 흔히 보아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 같이 내려놓지 못함에서 기인(起因)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떠난 자리가 맑고 아름다워야 한다. 쓰레기가 남게 되는 떠난 자리는 비극이며 오욕이다. 지난 해 시애틀 연합집회 강사로 다녀왔을 때 microsoft사 회장 빌 게이츠가 설립한 재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1955년생의 젊은 나이인데 2008년에 은퇴할 것을 선언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아름다운 은퇴라고 대서특필을 했다. 1975년 스무 살 나이에 microsoft를 설립한 빌 게이츠는 30년 만에 이 회사를 연간 매출액 420억 달러, 전 세계 102개 국가에 6만 3천여 명의 직원을 둔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키웠고, 동시에 그는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가 지난 2000년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따서 설립한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전 세계의 보건과 교육 향상에 기금을 대고 있는데 30조원에 달하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들과 가난한 나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해왔다.
다시 말하면 돈을 정직하게 벌어서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였고 이제 더욱 그러기 위하여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여 소외된 자들을 위해 남은 생애를 바치겠다는 것이 빌 게이츠의 은퇴의 변이었다. 쉬기 위해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많아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자선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하여 은퇴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범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라는 2인칭의 삶을 통해 아름답게 엮어지는 법인데 ‘내가’, ‘나의’라는 1인칭 삶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하는 숱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내일을 새삼 생각해 보았다. 현실에 충실하되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삶을 부분적으로 보지 말고 통관(通觀)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미래를 보는 비전이 없으면 딱따구리처럼 눈앞의 것만 집착하다가 결국 거기에 치어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법과 상식이라는 기준의 울타리를 허물지 않고, 때로는 그 법과 상식의 기준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영광과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은퇴의 분기점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데 나는 우리교회의 이 행복과 아름다움이 빛 바래지지 않기 위하여 조기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기에 내려놓지 못함으로 분수를 잃어버리고 상황을 어둡게 만드는 부끄러움의 은퇴가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워하고 삶의 거울처럼 여겨지는 아름다운 은퇴를 꿈꾸면서 나는 오늘도 행복한 포항중앙교회 정원에서 농부의 사역을 감당한다.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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