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임중 목사(포항중앙교회 담임, 경안신학대학원 대학교 총장)
나는 바둑을 즐겨했던 때가 있었다. 아마추어 4급 수준에 이르도록 속된 표현으로 바둑에 한 때는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목회를 시작하고도 바둑을 즐겼는데 이제는 전혀 바둑을 둘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장기나 바둑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훈수’다. 훈수란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끼어들어 수를 가르쳐 주는 것을 말한다. 어디든지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곳이면 구경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곳에서는 훈수가 빠질 수 없다. 사람들은 훈수하다 뺨 맞는다는 속담에도 여의치 않고 훈수를 하게 되는데 훈수하는 사람이 장기를 두어도 다른 사람이 또 다시 훈수를 하는 것, 그것이 바둑이나 장기의 매력이기도 하다. “포가 나가야 한다”, “차가 나가야 한다”, “이럴 때는 이 한 수로 이길 수 있다”는 등 구경꾼들은 훈수를 하면서 때로는 곁에서 지켜보면서 답답해하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쓴 소리도 하면서 판을 떠나지를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수는 적당해야 그 맛이 나는 거지 도를 넘으면 판이 깨지는 것이다. 얼마 전 때 아닌 훈수정치가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에게 이래야 하느니 저래야 하느니 하는 훈수를 하는 정치 원로들이 있는가 하면, 훈수정치를 중단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직 대통령의 현실정치 훈수로 인하여 정당과 개인들의 이해 관계가 마치 미나리 판처럼 얽히고 설켜 있는 모습과 이로 인해 일어나는 쌍방간의 설전(舌戰)을 보고 들으면서 씁쓸한 기분이 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훈수가 도를 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한때 한국교회의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와의 관계 악화 이야기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역시 원로목사의 후임 담임목사에 대한 목회 훈수로 인해 빚어지는 일련의 사안들이 대부분이다. 하기야 수십 년 일구고 가꾼 목회의 터전을 바라보는 원로목사의 입장에서는 아직은 설익은 과일처럼 느껴지는 젊은 담임목사의 목회가 걱정스럽고, 그러하니 한 두 마디 훈수는 분명 판을 잘 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훈수가 도를 넘을 때 판이 깨지는 장기판이나 바둑판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평안하지 못하고 분쟁과 어두움이 깊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고 듣는데 그 경우도 목사의 목회를 두고 훈수를 두는 교인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적당한 훈수는 목회를 아름답게 하고 활력 있게 하지만 그 훈수가 도를 넘게 될 때 목회의 판이 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목사가 교인들을 지도할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탐진치(貪瞋痴)란 말이 있다. 탐진치는 삼독(三毒), 삼혹(三惑)에서 생긴다. 탐(貪)은 탐욕이며, 진(瞋)은 노여움이요 분노이며, 치(痴)는 무명(無明)이요 우치(愚痴)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다. 무명(無明)이 무엇인가? 사물의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훈수의 진정한 맛은 탐진치의 치(痴)의 교훈을 마음에 담고 할 때 맛이 나는 것이다. 목회를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목회를 훈수하는 교인들의 면면을 분석해 보면 목회를 돕고 목회를 맛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탐진치에서 나오는 훈수가 대부분임을 경험한다. 그래서 인불학부지도(人不學不知道)란 말이 삶의 명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가는 길을 모른다’는 뜻인데 인격이란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수양이라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삶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훈수가 진정한 맛을 내는 것이다. “왜 그렇게 장기를 두느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막상 자신이 장기판에 앉게 되면 판 흐름이 보이지 않아 패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자기 입장에서, 자기 생각에 함몰되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그렇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것이 겸손이다. 그래서 지금은 말꾼보다는 일꾼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매미는 한 여름에 싱그러운 자연과 함께 한껏 노래를 부른다. 그렇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데도 여름처럼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매미는 없다. 하기야 요즈음 날씨가 아열대처럼 이상해져서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지만 그런 경우를 철모르는 코스모스라고 하듯, 우리 그리스도인은 시기와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고 철모르게 살아서는 안 된다. 요즈음 정치판의 훈수 논쟁을 보면서 교회를 들여다보게 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새삼 생각해 본다. 어떤 경우이든 훈수는 적당해야 판의 맛을 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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