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빈 목사(거제 흙학교)
지금은 포도가 제철이다. 우리 흙학교 주위에는 포도농사를 하는 몇 집이 있다. 참으로 싱싱하고 맛좋은 거봉포도 밭이다. 나는 늘 이 포도밭은 지나다니지만 불행히도 금년에는 한 번도 이 포도를 맛보지는 못했다. 그것은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우리 내외는 마트에서 유통기한에 쫓겨 세일하는 포도를 조금씩 사서 먹는다. 그러나 나는 포도 맛 보다 더 진한 포도 먹기를 최근에 공부하고 있다. 옛날 로마인들은 ‘우리 인생은 포도와 더불어’라는 표현을 통하여 포도 안에 삶이 있음을, 파스테르는 ‘한 병의 와인(wine)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의 가능성’을, 그리고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포도는 먹지만, 와인은 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과일과 음료는 두말할 것도 없이 포도와 포도주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포도나무이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인은 그 가지요 열매이기 때문이다.(요15:1-2) 또한 교회는 ‘새 술을 담는 새 부대’로서의 집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포도와 포도주를 빼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으리라.
1. ‘포도와 포도주’ 공부를 다시하자.
포도는 먹기 쉽지만 포도주를 마시는 일은 간단치가 않는 것 같다. 포도주는 세계인이 즐기는 보통 음식이기도 하지만 아주 고가이기도 하다. 포도주 1병에 1억8천7백만원에 거래된 일도 있다. 고가일 뿐만 아니라 그 종류와 향과 맛이 다양하여 선택이 어렵다. 더욱이 마시는 예절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고려대학은 이번 학기에 한 이색 강좌를 신설했는데 그게 ‘포도주 개론’이란다. 이 과목은 70명이 정원인데 551명의 강의 수강신청자가 몰렸다고 한다. 대학에서 ‘포도주 개론’을 공부하는데, 교회는 왜 ‘포도주 개론’을 공부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이 마시는 포도주 가격은 환산조차 할 수 없는 고가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새계약식’이 아닌가?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생태학적 포도주 개론’부터 다시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2. 좋은 포도열매의 자리
오늘날 세계에는 1천만ha 이상이 포도밭이다. 세계의 재배과수 중에서 제1의 재배면적이다. 좋은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선 우선 좋은 토질의 땅을 찾는 일이 중요한데 이것을 와인 전문 용어로 ‘테루아르(Terroi)’라고 부른다. 토양·기후·환경의 등을 조사하여 최적의 조건을 찾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지질학자, 수문학자들의 전문 지식뿐 아니라 항공사진이나 인공위성 사진까지 동원해 좋은 포도를 키울 수 있는 테루아르를 찾아내고 있다. 또한 좋은 포도주는 좋은 포도와 기술이 만든다고 단순히 생각해 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에서 얻어진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도밭마다 유전적으로 아주 다양한 효모 균주가 존재하고 이것이 와인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와인을 숙성시키기 위한 참나무통에서도 다른 종류의 효모가 발견되었다. 좋은 효모가 있는 참나무통을 만들어 포도를 숙성시키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기계론적인 교육에 익숙한 우리는 포도와 포도주를 마시면서 ‘맛있다’와 ‘맛없다’ 그리고 ‘싸다’ 와 ‘비싸다’라는 아주 단순한 사고에 젖어 있다. 그리고 포도를 생산하는 농부역시 ‘얼마나 많이 수확할까’와 ‘얼마나 많이 벌까’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교회역시 땅과 생명으로부터 소외된 기계적 교육현상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지는 포도의 엄청난 ‘상징성’은 소멸이라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생태학적으로 보면 거기에 ‘땅’이 보이고 ‘효모’가 보이고 하나님이 보이고 생명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할 이유가 보인다. 좋은 포도주를 마시기 위하여 땅은 더욱 소중해 보이고, 참나무 역시 소중하다. 이것이 생태수용미학적 교육의 시작이다.
3. 포도에서 ‘분노와 정의’를 생태학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J.E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은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서 톰 조드의 입을 통하여 농민들의 한을 ‘분노한 포도’로 알알이 그려놓고 있다.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의 구성을 본떠 묘사한 대작이다. 분노의 포도는 땅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결국 ‘아버지는 땅’이었다. 땅의 상실은 희망의 상실로 죽음을 낳는다. 그들의 가족의 희망의 끝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처럼, 그 땅이 이미 사람들에게 점유된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트랙터로 갈아엎어져 있었다” 바로와 아합에 의하여 착취된 땅에는 거대한 부가 그 안에 있지만, 빼앗긴 자들이 결코 역사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는 땅이다. 결코 그들은 그 풍요를 맛볼 수 없다. 그들은 죽어서 사라진다. 열왕기 21장에는,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는 착취를 폭로한다.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나봇을 죽인 아합과 이세벨의 권력에 맞서 엘리야는 그 땅과 포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라는 주장으로 맞선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하여 이세벨을 죽음을 선고한다. 스타인백처럼, 엘리사처럼 오늘의 교회가 포도에서 ‘분노와 정의’ 그리고 하나님의 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생태교육의 가능성이다.
4. 포도에서 새 시대와 새계약을 읽어 내야 한다.
포도는 메시아 시대의 도래와 구원의 시대를 상징하기도 한다(아모스 9:13-14; 호세아 14:7; 요엘 4:18; 이사야 29:17; 예레미아 31:12). 요한복음 2장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는 첫 번째 표적인 포도주 사건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의 현존을 말하고 있으며, 이 표적 후에 저자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라고 말씀한다. 잔치집에 기쁨대신 수치를 얻을 수 밖에 없을 때 ‘더 좋은 포도주를 내는’ 회복과 계약을 우리는 성서에서 본다. “포도의 모든 포도 알에는 악마가 있다“고 코란은 말한다. 그러나 성서는 “포도주가 없으면 계약도 없다“ 우리는 포도에서 악을 극복하고 새언약을 수용미학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가르쳐야 한다. 우리 흙학교는 이것을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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