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임 중 목사. 포항중앙교회 담임 .경안신학대학원 대학교 총장
양반 가문에서 자란 나는 예(禮)에 관해 어릴 때부터 몸에 체득하는 훈련에 익숙했다. 그래서 항상 삼사일언(三思一言)을 중시했고, 염치(廉恥)를 앞세웠고, 그것에 못미치는 언행이 연출되면 어김없이 “지각없는 놈”이라고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 이처럼 앎과 행동이 균형 잡힐 때 지각 있다는 말을 듣게 되기에 전문 지식이나 정치의식과는 구별되는 말이 바로 지각(知覺)이라는 말이다. 일의 경중을 가릴 줄 알고, 사물의 앞뒤를 분별하며, 분수와 염치를 알고 인내와 절제를 통해 불가(佛家)에서 가르치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마음에서 연출되는 것이 지각일 것이다.
맹자사단설(孟子四端說)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훈훈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지혜의 말이다.
첫째는 측은지심(側隱之心)으로서 남의 불행을 보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며, 둘째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서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 하는 마음이고, 셋째는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서 겸손하고 사양하는 마음이요, 넷째는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마음이다. 맹자는 그 중에서도 측은지심을 강조했다. 그래서 “無側隱之心 非人也” 즉 “측은지심이 없으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나왔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각없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주간에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얼마 전 출간 된 ‘김훈’씨의 <남한산성>이라는 소설이다. 병자호란때 청군의 진격으로 조선의 조정이 남한산성에 47일 동안 갇혔다. 이러한 무기력한 국운하에서도 남한산성에서는 ‘인조’ 앞에서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 말과 말이 실타래 엉키듯 싸움의 씨줄 날줄의 치욕적인 역사가 진행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보았다. 척화파 김상헌, 주화파 최명길, 영의정 김류, 수어사 이시백이라는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오늘의 청와대와 정부와 국회를 들여다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흘렀다. 그러다가 후닥닥 놀라 정치권을 들여다보기 전 우리교회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행여 우리 교회가 이 모양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내 자신이 인조처럼 무기력하게 남한산성에 갇힌 목회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어느 시대이건 마찬가지이지만 살아있는 동안 온갖 치졸스러운 짓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연하게 대의(大義)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분연하게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 소설 <남한산성>에서도 그렇지만 오늘날 지도층의 타락한 정치와 도덕 불감증으로 인한 민초들의 핍진(乏盡)한 삶을 보면서 우리교회가 행여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몸을 파고들었다.
온 세계 국가가 21세기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러기 위하여 국제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엮어 가느냐에 관점을 두고 있는 지금 우리의 대통령이나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말(言)하는 것을 듣고 읽으면서 서글픈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저녁 뉴스 시간이 되면 어느 하루 마다않고 대통령의 말(言) 때문에 안방이 행복하지 못했다. ‘그놈의 헌법’이라는 말이 역사에 남을 치어(恥語)가 되었고, 대한민국의 최고 규범인 헌법이 찬밥 신세가 되었다고 일간지 칼럼리스트들이 앞 다투어 쓴 것을 읽으면서 내면에서 치솟는 화를 가라 앉힐 수 없었다.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 내지 모독하는 모습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각(知覺)없는 언행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분초를 다투면서 변화하는데 대한민국 국회를 통해 입법화 된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 불만스럽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우리의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지붕 아래 한솥밥을 먹으면서 서로를 개처럼 물어뜯는 대선주자들도, 언론 본래의 사명도 마비된 체 편견과 이기주의적 상황에서 허우적거리는 언론도, 이 글을 쓰는 목사도, 존경할 지도자가 없다는 슬픈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보다 성숙한 인격과 삶을 통하여 지각없이 처신하는 오늘의 ‘남한산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말(淸末)에서 중화민국 초기에 걸쳐 활동한 중국의 유명한 정치가이며 사상가인 ‘양계초’는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 인간의 시작이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끝이다”는 말을 남겼다. 책임은 양심적인 행동에서 가능하다. 양심적인 행동은 양심적인 사고(思考)의 산물이다. “사고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는 윌리암 제임스의 말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먼저 양심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지각 있는 사람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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