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만 칼럼】속도의 충돌

우리는 지금 ‘속도’가 문제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속도는 전쟁의 승패(勝敗)를 좌우하고 부(富)를 창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시간은 그만큼 고속화 되어가고 있다.
최고 시속 300km의 초특급열차를 한시간 타는 것과 시속 70km의 완행열차를 한시간 타는 것과 시간적으로는 같다.
그러나 인체의 리듬에 있어서는 틀린다. 고속이동이 가져오는 피로감이 저속이동보다 더 심하다. 현대인의 피로증은 사회속도의 고속화가 원인이다.
속도의 충돌에서 온다는 말이다. 물자의 이동, 정보의 흐름이 고속화되어 가는데 인체의 맥박수는 1분간에 60~70회이고 호흡수도 1분간 14~20회라는 것은 수천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고속이동과 정보의 고속처리에서 오는 통증을 잘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정보량을 짧은 시간에 전달하기 위하여 아나운서의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60년대엔 1분간에 300단어를 말하던 것이 80년대는 400단어, 지금은 500단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다.
MIT미디어랩의 ‘니코라스 네크로본떼’ 교수는 1990년 중반에 쓴 책 ‘Being Digital’에서 ‘아톰(物質)에서 비트(情報)까지’라는 형태로 기술발전을 요약하고 있다. 70년대 중반에 철강으로 상징되는 아톰계에서 반도체용 실리콘이라는 비트계가 대체 제품이 된 것으로 입증된다.
최근 발간된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라는 저서를 보면 앞으로 ‘시간, 공간, 지식’의 3가지가 부(富)를 창출할 심층기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 상황은 경제발전의 속도를 제도와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속도의 충돌’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질주하고 있고 작고 탄력적인 단위의 네트워크로 무장한 비정부기구(NGO)들도 시속 90마일로 기업 뒤를 바짝 쫓고 있는데 노조는 30마일, 정부는 25마일, 학교는 10마일, 정치권은 3마일 등 거북이 걸음으로 오히려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핵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국의 속도지상주의 문화와 신중하고 더딘 외교정책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오늘의 우리의 문제는 비단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 노사간의 대립에서 오는 갈등만이 아니고 기업과 정책, 과학과 정치, NGO와 제도권, 북과 남의 속도의 대립과 충돌에서 오는 변목현상이다.
고속화냐 저속화냐 하는 것이 반드시 선택의 문제라고 규정하기보다 균형(밸런스)의 문제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토인비는 현대문명을 불구문명(不具文明)이라고 했다. 물질문명이 토끼같이 뛰어가는데 반하여 정신문명은 거북이처럼 기어가고 있는 문명의 불균형, 이것을 불구문명이라고 한 것이다.
오른쪽 다리는 짧고 왼쪽 다리는 긴 ‘절뚝발이문명’이 속도의 언밸런스(불균형)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도 속도의 충돌현상이 있는 것이다. 이 균형을 잃은 속도의 불구현상 한가운데 뛰어들어 이것을 조정(영적 분야의 신장)하는 역할을 오늘의 기독교가 감당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200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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