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환 목사님의 북유럽 旅窓 에세이】 <5>

북유럽

발틱 해의 일출 어둠 속에서 잠이 깨었다. 마치 내 몸이 선반위에 높이 얹힌 듯한 기분-. 이윽고 나는 어제저녁 핀란드에서 스웨덴으로 가는 유람선 ‘실자라인’을 탔던 생각을 떠올렸다. 벽에 붙은 선실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새벽2시30분. 다행히 아내와 나는 10층 시사이드 캐빈(바다 쪽 선실)에 들 수 있었고 핀란드를 떠날 때도 항구의 불빛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선창으로 바깥을 내다보니 바다 위를 비추는 다운 라이트로 인해 배는 금빛 물결을 가르고 있다. 지구의 반대편 북유럽 먼 나라에 와서 유람선을 타고 새벽달이 떠있는 발틱해 밤바다 위를 미끄러져가는 것, 환상적이라고 할까 한참동안이나 금빛 물결을 혼자서 내려다보았다. 순간순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어제저녁 핀란드의 고도(古都) 트루크 항에서 승선한 후 7층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캐빈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깊은 잠에 빠져 4시간정도 잔 것 같다. 우리가 트루크 항 터미널에 오후6시쯤 도착했을 때는 대기하는 승객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오후9시 승선할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사람들은 마치 우리나라 추석이나 설명절의 역 대합실처럼 빼곡히 밀려들었다. 실자라인 유람선은 길이203m, 높이31.5m, 탑승객2,852명, 캐빈985개 그리고 400대의 승용차나 60대의 버스를 실을 수 있으며 그 안에 12층까지 갖가지 시설을 갖춘 초호화 유람선. 내가 불을 켜자 아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는 나보다 먼저 잠이 깨어 창밖으로 금빛물결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조용히 캐빈을 빠져나왔다. 어제저녁에 둘러보지 못했던 배안을 구경할 심산이었다. 통로에는 배의 단면도와 함께 층마다 여러 방의 용도가 게시되어있었다. 나는 갑판(sundeck)이란 말을 보는 순간 ‘일출’을 떠올리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실이 있는 7층으로 내려와 승무원에게 새벽에 일출을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보고 친절하게 메모지에 ‘05:09’ 일출시간을 적어주었다. 이때 내 시계는 03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2시간만 기다리면 발틱해의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배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우리는 3층에서 6층으로 올라오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드는 바깥으로 통하는 통로로 나왔다. 거기에는 2개 층을 한 층으로 만든 공간에 여러 대의 구명정이 매달려 있었고 어둠 속 멀리에는 반딧불이 같은 불빛이 깜박이고 있다. 나는 그 구명정들을 보면서 영화 ‘타이타닉’호의 최후를 떠올렸다. 부와 명예를 자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튼튼하고 가장 빠른 배를 자랑하려고 최고 속력을 내며 잠시 방심한 틈에 나타난 거대한 빙산을 피하지 못해 수많은 생명이 수장되고 거대한 유람선이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던 모습. 언제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 아닌가? 캐빈으로 돌아오는 중앙로비에는 삼삼오오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눈에 띠었다. 방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려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다 다시 불을 켜니 04시. 창밖은 캄캄하던 색깔이 서서히 엷어지면서 새벽빛을 회복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가. ‘의유당 김씨’의 일출을 그린 ‘동명일기’생각이 났다. “행여 일출을 못 볼까하여 노심초사하여 새도록 자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05시가 가까워오면서 우리는 선데크로 올라갔다. 갑판위의 밤바람이 제법 세차다. 이제 10여분만 기다리면 발틱해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새해 일출을 보기위해 정동진으로, 간절곶으로 동해바다를 찾아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실자라인 갑판에서 발틱해의 일출을 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보다 먼저 갑판에 올라와 있던 두 남녀는 우리가 올라오자 곧바로 내려가고 아내와 나는 약간 추운 것을 견디며 발틱해의 일출을 기다린다. 05시5분, 6분, 7분, 8분, 동쪽하늘이 불그레하며 곧 해가 솟아 오를듯한 자리에는 몇 가닥의 검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었다. 9분이 지나고 잠시 후에 해는 한쪽 모습을 살짝 드러내는듯 했으나 다시 얼굴에 스카프를 두르듯 구름 속으로 숨는다. 카메라셔터를 누르며 10분이나 더 기다려도 해는 구름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짙푸른 바다위로 배는 양쪽으로 숲이 무성한 해협을 지나고 스톡홀름 항구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구름의 부피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에 우리는 선실로 내려왔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해의 소원을 빌던 모습이 생각난다. 해와 달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일출을 보려는 마음은 새해와 같은 깨끗한 마음으로 한해를 살고 보름달을 보면서는 달처럼 둥그런 마음으로 정다운 이웃을 만들어가려고 다짐해야 하지 않을까? 잠시 후 7층 레스토랑 창가에 앉았을 때 발틱해의 강렬하고 찬란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멀리서 지나가던 섬들이 가까이서 우리를 마중하는것 같았다. 바닷가 숲 속에는 수를 놓은 듯 그림 같은 집들이 박혀있고 자가용 승용차처럼 바다 위의 교통수단인 보트들이 물가에 묶여있다. ‘물개’는 밤새 우리를 등에 태우고 스톡홀름 항구에 내려주었다. (*필자주=‘실자’는 핀란드어로 물개라는 뜻)

200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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