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시 섭 변호사
지난 달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신청한 영화 ‘다빈치코드‘에 대한 영화상영금지가처분에 대한 기각결정문의 내용을 보면, 법원은 ‘영화와 소설 모두 허구임이 명백하므로 관람자로 하여금 영화에 등장하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오인시킬 개연성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판결문만을 놓고 보면, 판사님들의 ‘믿음‘이 최소한 개봉을 걱정하시는 목사님들보다는 ‘한 수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소설 ‘다빈치코드‘를 서점에서 잠시 살펴본 적이 있을 뿐 끝까지 완독하지는 못했으나, ‘다빈치코드깨기(The DaVinci Deception)‘라는 번역서를 통해 간접적이긴 하지만 소설과 영화의 줄거리를 접하게 되었고, 저자 댄 브라운의 주장과 그 반박의 근거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의 역사적, 신학적 구체성과 근거들의 정확성을 신학자가 아닌 평신도의 입장에서 왈가왈부한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면서 시카고 무디교회 어윈 루처 (Erwin Lutzer) 목사님의 책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리곤 댄 브라운의 주장들이 이른바 ‘음모이론‘(Conspiracy theories)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존 교회가 예수의 신성과 결혼에 대한 거대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린 항상 ‘기막힌 사건들을‘ 바라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사건의 진짜 실체인 뭔가 그럴듯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현재의 ‘유언비어‘가 언젠가는 ‘사실‘로 확인될 것이라 확신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음모이론의 핵심은, ‘소수의 예지자들만이 아는 역사의 진실이 있다‘는데 있습니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지난 5월 31일에 있었던 지방선거결과에 대한 대통령과 일부 집권층 지도자의 발언에서 저는 또 다른 ‘음모이론‘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현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한 선거결과를 두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내 대통령 지지세력은 ‘비록 현재는 국민들이 우리의 진심과 역사의 흐름을 알지 못해 순간적인 감정으로 반대표를 던졌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야 할 역사적인 대도(大道)를 가야만 오히려 국민의 신임을 얻게 되고 차기 대선에서도 이긴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집권층의 생각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는 정치적으로 계속 역풍을 맞았지만 결국 대통령이 됐다‘는 발언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는 ‘현상적으로 드러난 국민의 표심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역사의 흐름이 있다, 또 그것을 우린 알고 있다‘라는 것이고, 이러한 측면에서 대통령은 자신을 ‘예지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사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지연, 학연으로 거기다 지역감정까지 보태어 ‘우둔한 몰표‘를 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 보면 진정한 역사의 주재자이신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백성들의 ‘몰표‘를 가끔씩은 인정하시는 듯 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왕을 허락하신 하나님‘(사무엘상 8장)은 ‘왕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진노의 수단으로만 사용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우둔한 인간들이지만 그들의 요구에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또 다른 공의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역사의 주관자이신 그 분이 그러하셨다면, 청와대는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드러난 민심을 보면서, 숨겨진 역사의 비밀을 설교하기보다는, 우선 국민들의 한숨과 안타까움을 깊이 듣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라는 이방적 제도를 허락하시면서 들려주셨던 ‘자세하고도 친절한, 그러면서도 애정어린 경고와 설명‘을 왜 우리의 지도자는 우리에게 해 줄 수 없는 것입니까. 그렇게도 청와대는 ‘신비한 지식‘을 보유하고,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역사 뒷편의 ‘음모‘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요.
전 ‘다빈치코드깨기‘를 덮으면서 댄 브라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건 ‘숨겨진 오묘한 지식을 찾지 말고, 드러난 분명한 진리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현재 정치지도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말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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