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언제나 건강 문제였다. 타고난 체질이 약골인데 언제부터인가 밤이 되면 견딜 수 없는 저림의 아픈 다리를 주물러 주느라 잠을 설치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만큼이라도 건강한 몸으로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살아간다.
표준어로는 최선을 다한, 속된 표현으로 미친 듯 목회와 학문에 정진해 온 나의 삶! 이제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성숙한 세월의 중앙에서 때때로 나는 왠지 허전함으로 출렁이는 가슴을 기도로 채우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바울이 고백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오직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목사로서 더욱 함량미달을 느끼면서도 정직하게 고백하면, 종종 내 마음은 저물어가는 들녘에 선듯하다. 이것이 어르신들이 말씀하신 늙어가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고소(苦笑)를 금치 못한다.
돌아보면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된 세상 일에 분요했기에 보다 넉넉함으로 네게 평안을 주기보다는 나의 욕구 충족을 위해 네게 아픔을 준 삶이 더 많았던 세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의 유익을 위한 행동하는 나의 삶’을 철학으로 오늘에 이르도록 동분서주 했던 세월이지만 그래도 늘 부족함 투성이의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윤동주님의 명구(名句)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새삼 다짐해 본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난의 옷을 입고 살아오는 동안, 내가 비록 가난의 옷을 벗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마음만은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오늘을 살아 왔다. 보다 값진 날들을 소망하면서 내일을 향한 시간 속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나를 둘러싸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땀으로 얼룩진 내 얼굴에 한 순간만이라도 소탈한 웃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오늘을 살아 왔다. 걸음걸음 가시밭길 같은 길을 행보하면서, 나의 가는 길가에 솟아난 잡초 같은 아픔을 눈물로 밟으면서 나는 보람을 가꾸면서 오늘을 살아 왔다.
때로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후리는 겨울 바람처럼 모질게 나의 삶에 아픔으로 다가온 순간 순간에도 풍상을 이기는 소나무처럼 의지를 굳게 하면서 나는 오늘을 살아 왔다. 일어설 수 조차 없던 허우적거리는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잠깐이라도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을 살아왔다.
수 없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가는 사람들! 그리고 멀어졌다가 다가오는 사람들!
그럴 때마다 벳새다 언덕의 예수님에게 수 천 명의 군중이 다가왔다가 그 수 천 명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 대었던 멀어졌던 군중을 생각해 본다.
예수에게 있어서 향유를 깨뜨렸던 마리아가 있었는가 하면, 예수를 은 30에 팔아야 했던 유다가 있었고, 바울에게는 자신의 목이라도 내 놓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했던 에바브로디도와 디모데,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는가 하면 항상 바울에게 해를 입혔던 구리 장색 알렉산더도 있었다.
나에게 마리아는 누구이며, 에바브로디도와 데모데는 누구인가? 나는 또 누구에게 마리아가 되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되는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생각해 보면서, 살아가야 할 날들을 예견해 보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목사님, 오늘따라 머리가 더 많이 희어진 모습에 눈물이 나요. 둘째 아드님 성형외과 의사인데 주름 좀 정리할 수 없어요?”
우리교회 커피숍 ‘엘림’ 홀에서 만난 K 집사님의 젖은 목소리는 목사의 가슴에 잔잔한 개울물 소리가 된다. 그러면서도 이른 아침 성가대석에 앉아 계시는 연로하신 장로님들을 생각하면서, 매일 매일 마치 주일인 듯 살아가는 교회 곳곳의 헌신하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목사는 새로운 마음으로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톨스토이가 만년에 남긴 작품 ‘세 가지 질문’에서 “일생 중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만나는 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라는 삶의 진리를 나의 것으로 새삼 다듬으면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사랑으로 ‘너의 유익을 위한 행동하는 나의 삶’을 오늘에 실천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며, 그것이 나눔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십자가의 도를 행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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