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김홍석 목사】스승의 날과 촌지


이제 며칠 지나면 또 다시 스승의 날이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것이지만, 서울지역 교장협의회가 자율휴업일로 정한 것을 비롯하여 제대로 된 행사 하나도 갖지 못하고 아예 교문을 폐쇄하거나 휴교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선생님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를 쉬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주고받는 바람직하지 못한 촌지를 염려하여 취해진 조치라고 하니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소풍을 가다가 산기슭에 고즈넉이 피어있는 들꽃이라도 꺾어다 화병에 담아 선생님의 책상 위에 놓아 드리던 낭만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스승의 날을 학기말로 옮기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자신의 자녀를 맡겨 놓은 학교나 선생님에게 촌지를 건네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혹시라도 촌지를 전하지 않으면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불이익이라도 당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우리 시대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대통령이나 장관이라도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님께 드리는 촌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고 보면, 어느 정도 심각한 지를 짐작 할만하다.

촌지(寸志)는 작은 정성을 드린다는 의미이지만, 이미 「작은 정성」이 아니라 서로에게 부담스런 관행이 되고 말았다. 필자는 중등학교에서 10년 정도 교원노릇을 한 적이 있다.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우리학교를 떠나 서울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학생의 어머니가 교실의 커튼을 새로 주문하여 달도록 건냈던 촌지와 학급의 어려운 학생을 도와주라고 어느 학부모가 무명으로 남기고 간 1백만 원의 봉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아직도 누가 전한 봉투인지 모르지만 어려운 몇 명의 장학금으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지금도 1백만 원은 적지 않은 돈이지만 15년 전에는 제법 큰 액수여서 촌지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가끔씩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이 내게 다가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촌지를 받아도 됩니까?」
「그럼요. 마음껏 받으십시오. 성의를 무시하면 되겠어요?」
「예? 받으라고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그런데 3,4월에는 받지 말고, 학기말에만 받으시죠.」
「에이, 차―암…. 그때 촌지를 주는 학부모가 어디 있어요?」
「…」
<군사부일체>라 하여 스승을 존경하던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가 실종되어 가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풍토에서 수준 높은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 자녀들부터 스승을 존경하는 교육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스승의 그림자조차도 밟지 않았다던 옛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 윗사람을 공경하고 가르치는 스승과 좋은 것을 함께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갈라디아서 6장6절에서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셨으므로, 영적인 스승들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가르치는 스승들께도 좋은 것으로 대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대부분이 크리스천인 미국의 학부모들도 학교의 선생님들께 선물을 하고 있다. 다만 한국처럼 돈 봉투를 만들어 촌지로 건네는 것이 아니라 학기말 경에 작은 선물을 선생님께 드리고 있다. 그것도 한 학생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연간 한도는 25달러 정도이다. 그야말로 촌지의 작은 정성일 뿐이다.

또 다시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크리스천 학부모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녀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작은 정성을 전했으면 좋겠다. 학기 초나 스승의 날이 아닌 학기말에 작은 정성을 선물한다면 이를 두고 뇌물이라고 하거나 부담스러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놀림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문화이다. 그리고 스승의 날에는 교회에서 자녀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기억했으면 한다.
200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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