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로 명예심이나 명예주의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고전적인 충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목회자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직위나 명예스런 자리를 갖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명예를 갖는 경우는 별반 흔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선배 목회자들의 이런 충고는 교회나 기독교 단체 내에서의 여러 가지 감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이름을 대면 거의 다 알 만한 사람들이 최근에 어떤 단체를 조직하여 집회를 개최하면서 신문에 공고하였는데, 과연 자신의 직책과 정확한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인원도 100명이 넘는다. 대표고문 1명, 상임고문5명, 실무고문3명, 고문 2명, 명예총재1명, 총재 1명, 상임부총재1명, 실무부총재3명, 운영부총재 3명, 부총재 2명, 대표대회장 1명, 상임대회장 4명, 실무대회장 6명, 운영대회장 5명, 공동대회장 18명, 촬영준비 위원장, 섭외준비위원장 등의 준비위원장 14명, 사무총장 1명, 상임총무 3명, 사무총장 산하 준비위원장 7명, 진행위원장 22명, 사무국장 1명.
많은 교회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교회연합 기구마다 담임목사들에게 별 의미도 없는 감투를 맡기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다시피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음을 알았으면 한다. 명예심이나 명예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항변하겠지만 적어도 국외자의 눈에는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만드는 이러한 조직이나 직책은 평신도들도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보다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각종 평신도들의 조직을 보면 앞에서 언급한 직책과 조직을 그대로 준용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목회자들이 사용하는 직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한국기독교에서는 총회장을 역임한 목사들에게 「증경총회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오고 있다. 아마도 1970년대 말부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증경>이라는 용어는 3천 페이지가 넘는 국어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는 단어를 기독교 자체에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적, 성경적 용어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마다 고유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구원이라든지,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기독교 고유의 용어로서 세상 사람들이 바로 이해할 수 없으므로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직전회장 정도야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겠지만, <증경>이라는 용어를 교회 밖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아마 십중팔구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이 용어를 확대재생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자어임에도 불구하고 한자로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사람들도 정작 많지는 않을 것이다. 총회장을 역임한 목사에게 붙이던 <증경>이라는 호칭이, 노회장 역임자에게도 <증경>노회장, 각종 기독교 단체의 회장을 지낸 자들에게도 <증경>회장이라는 호칭이 따라 붙더니 이제는 웬만한 남녀 평신도 단체에도 <증경>이라는 말이 무차별적으로 쓰임으로 말미암아 이 용어가 본래 사용되기 시작하던 당시의 존경하는 의미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영어권에서도 라는 직책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우리처럼 권위주의나 명예주의적인 면보다 <역임자(歷任者)>정도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다.
어느 교단에서는 아예 규칙으로 <증경>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우리 시대에 총회장을 역임한 존경하고 싶은 목회자 몇 분을 <증경>으로 모시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증경>홍수시대의 <증경>은 존경과는 별개의 용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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