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을 먹고, 국회를 먹고, 헌법재판소를 먹고, 내년 여름에는 대법원을 먹고, 그 전에 사립학교를 먹고, 서울을 엿먹이고, 한·미 동맹을 흔들어 놓고, 대한민국을 온통 친일파(親日派)의 나라로만 색칠해 놓고, 대기업들을 겁주고 때리면서 저들은 한국의 공공부문과 시민사회의 모든 진지(陣地)들을 하나하나 먹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혁명’이 착착 진행되어 온 것이다.” 이상은 유근일 논설위원이 12월 27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사학법, 자유민주세력의 시험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의 논조는 나에게 별다른 설득력을 주지 못한 내용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상하게도 이런 내용들이 설득력 있게 들리고 이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위기 의식을 갖게 된다.
미국을 방문할 때 마다 교민들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좌경화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들을 표명하는 소리를 많이 듣곤 한다. 그럴 때 마다 이분들이 수구 골통 보수주의자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이들의 우려가 우리 사회를 올바로 꿰뚫어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교조가 어느 정도로 사악한 집단이지 실감있게 인식할 수가 없다. 더구나 사학법 개정이 통과되면 그 다음에는 사회복지기관 관련법, 그리고 그 다음에는 국가보안법,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 사회 전체의 좌경화로 치 닫게 된다는 우려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현실감있게 와 닫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설마 설마 하다가 사람 잡는 꼴’이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학관계자들과 종교단체가 그렇게도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는데 정부 여당이 왜 이렇게 사학법 개정에 목을 매 다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립학교는 한 번 사학인(私學人)들의 손을 떠나면 영 되찾을 수 없는 것이다”는 주장이 너무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교육의 일차적 책임과 권리는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가정에 있다. 부모는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자신들의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을 갖고 있다. 부모와 가정이 이 책임을 소홀히 할 때 국가는 통치 수단을 통해 교육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 그러므로 국가는 사학의 자율성을 신장시켜 줄 수 있는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학의 역사를 보면 국가가 사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신장시켜 주기 보다는 오히려 통제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사학을 간섭하고 먹어 들어오고 있다. 공·사립 학교를 막론하고 학교가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학생 선발권을 가져야 하며,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학부모 역시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관을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당연코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가는 교묘한 방법으로 학부와 사학의 학생 선발권을 탈취해 갔고, 이어서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이제는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라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사학법 개정을 통해 사학의 운영권을 빼앗아가려고 한다는 우려를 낳게 만들고 있다.
현재 중학교는 국가로부터 약 70%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며 고등학교는 약 50%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모든 사학이 준공립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가 사학에 대한 합리적인 통제 장치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학의 역사를 보면 사학 편에서 국가에 대해 재정 청원을 한 것이 아니다. 1974년도에 정부는 학생들을 소위 추첨제를 통해 각급 학교에 배정하는 교육평준화 정책을 강행하였다. 이때 정부는 사학의 재정결손을 국고로 보조해 주겠다는 달콤한 미끼를 제시하였고, 사학은 이러한 제안을 교육에 대한 정부의 통제나 건학이념의 훼손에 대한 심각한 염려도 없이 수용해 버렸다. 이런 점에서 작금의 사학법 개정과 관련하여 사학 스스로 심각한 자기 반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학비리를 빌미삼아 사학법 개정을 밀어 붙이는 정부와 여당 앞에서 사학이 사학법 개정 반대 운동을 전개해 갈 때 일반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철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사학의 운영권과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위헌의 소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교조가 학교교육을 장악하게 된다는 우려도 일리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라도 교육은 부모와 가정에 권한과 책임으로 돌려져야 한다. 작금의 사학법 개정은 악법이다. 정부는 교육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사학의 자율성을 신장시켜 줄 수 있는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해야 한다. 사학관계자들과 종교계가 이렇게도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는데 굳이 밀어붙이는 이유가 나변에 있는지 묻고 싶다. 교육은 정치 논리가 아니라 교육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교육에 대한 파시즘적인 통제는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교육 정책은 사학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자율성을 신장시켜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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