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렬 목사[마산 삼일교회 담임]
아버지와 아들이 참외를 가득하게 짊어지고 길을 떠난다. 날은 덥고 배도 고픈데 저만치 큰 나무 밑 짙은 그림자가 보인다. 아들이 “아버지 저 그늘에서 쉬어 갑시다.” 부자는 지게를 벗어놓고 그늘에 쉬었다. 아들이 또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우리가 참외를 팔면 얼마 남습니까? 그것을 먼저 먹고 가면 짐도 가볍고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참으로 똑똑한 아들이라 생각하고 두 사람은 배부르게 먹는다. 피곤하던 차 주린 배를 채웠으니 시원한 그늘 아래서 한 숨 자고 나면 더 좋을 것 같다. 부자는 그렇게 늘어지게 잤다. 일어나 보니 누군가가 참외 뿐 아니라 지게 채 짊어지고 가버렸다. 아버지와 아들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말 “어리석은 사람들, 누가 가져갔는지 모르지만 이익은 이미 우리가 먹어 버렸는데---.” 부자는 그렇게 좋아하며 긴 해 그림자를 밟으며 걸어갔다. 이처럼 이상한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앙이 저만치 있는데 이익이라는 계산법으로 아름답게 포장한다.
서울, 청계천을 덮어 도로를 내었다. 사람들과 차량의 왕래가 잦아질 때 콘크리트로 덧칠을 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발전이며 변화라고 편리해 했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도 흐르는 물도 볼 수 없었다. 간간히 서있는 가로수도 그 잎이 힘을 잃기는 마찬가지였었다. 그래서 도시는 온통 회색으로 덮였었다.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 볼 여유도 없었지만 그들이 쳐다 볼 때는 볼 수도 없었다. 봄에는 황사 때문이라고 남의 탓이라도 돌릴 수 있으련만 다른 계절에는 그저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청계천을 되돌린다고 할 때 작은 박수라도 보탰다. 그런데 이번에 한강의 잉어가 청계천으로 거슬러 올라왔단다. 물소리를 들을 서울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내 일처럼 즐겁다.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청계천을 바라볼 사람들, 그들의 열린 마음 그래서 도심의 삭막함이 걷힐 것 같아 즐겁다.
우리 집 앞, 산호천이 흐른다. 소금강산에서 흐르는 그 맑고 순한 물은 몇 발작을 내려오다 하수구로 토해내는 이기심으로 오염에 휩싸인다. 물은 썩고, 백태 낀 돌은 생명을 잃었다. 결국 엄마 품처럼 넓은 바다도 썩었다. 다리 난간에 서서 낚시 줄을 던졌음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결국 정서는 사라지고 우리네 마음들은 오염된 물처럼 그렇게 변해가고 있음도 느끼지 못했다. 이상한 계산으로 그것을 발전이라고 불렀다. 누가 나서려나? 회복을 향한 몸부림이 있어야겠다. 물고기가 돌아올 수 있는 살아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회복을 향한 작은 희생을 모아야 하리라. 잉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돌아올 수 있는 그 무언의 힘, 환경만 만들면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본래에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때, 그렇게 자아를 깨뜨리고 회색의 콘크리트를 걷어낼 때, 잃은 것이 돌아오는 그런 회복이 가능함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서남해권 9천만평에 2025년까지 인구 250만명의 물류 바이오산업단지를, 간척지 일원 3천만평에 2017년까지 골프장, 카지노, 자동차 경기장 등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건설한다고 한다. 이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S와 J프로젝트로 불리는 사업이다. 하나는 베일에 쌓였다가 이제서야 드러났고, 하나는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30조원이 드는 어마어마한 개발비의 조달과 그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또 얼마나 많은 콘크리트 조형물로 푸른 산야를 덮을까? 그곳에는 아직도 미꾸라지를 잡아 농가 부업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고기도 살 수 없도록 헤집어 버릴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개발의 당위성이야 미사여구이겠지만 그 과정은 왜 그렇게 냄새를 풍길까 하는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발의 이익에 들떠 있을까 하는 것이다. 또 이상한 계산법으로 참외를 먹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몽땅 잃고도 “헤헤, 그놈들, 이익은 우리가 이미 먹었는데--”라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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