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갖는 마음이지만 이맘때면 항상 마음이 가라앉고 경건과 절제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것이 사순절에 그리스도인이 갖는 신앙생활이며 기본자세일 것이다. 사순절(Lent)이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간으로 삼으면서 부활절을 앞두고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부활절 전야(Easter Eve)까지의 40일 간으로 경건과 절제를 통한 참회의 기간이다.
요즈음 국제정세는 전쟁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다양한 분쟁과 분열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국내 정치적 사회적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슬픈 것은 교회 안에서의 분쟁이 끊어지지 않고 사회 법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스스로 상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상하게 한 것으로도 우리는 일평생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내야 할 것인데 오늘의 십자가에 다시 예수를 못박는 행위를 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영국 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에 전통적으로 두 가지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첫째로，‘Give up’이라고 하여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일을 하는 것으로, 즉 자기에게 잘못된 버릇들을 찾아서 버리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분과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등을 버리라”고 했듯이 이런 모든 더럽고 추한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Shrive’이라고 하여 서로가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또 서로가 용서를 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수가 있고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성경에 보면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 없으나 회개하노라 하면 용서하라”(눅17:1-4)고 하셨는데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순절 기간에는 허물과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와 화해, 연합과 일치의 삶이 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십자가의 도를 의미한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를 제쳐놓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십자가의 도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자기주의가 강하고, 무질서가 이루어지고, 기본과 상식이 난도질을 당하고, 거짓과 위선이 활개를 치고, 그래서 교회가 분열되고 시끄러워 지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선행이나 자기 수련의 길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에 아멘 하는 믿음의 길이다. 이 길을 행보 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자기의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면서, 걸어가는 삶의 행보에서 작은 자를 돌보며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할 때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뉘인 예수의 손과 발에 못박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 자신의 심령에 내재되어있는 율법주의가 무너지고, 우리 가슴속의 죄가 찢어지고, 더러워진 양심이 찢어지고, 이웃과 원수 된 위선과 거짓이 찢어지고, 자신의 내면에 쌓아올려진 교만과 과학과 지식과 권력과 재물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불의, 탐욕, 악의, 원망, 불평, 수군거림, 시기와 질투, 미움의 인본주의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의로움과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생명력이 소성하고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의 부활신앙이 생활화된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곳에서는 식물들도 더욱 푸르게 자라난다. 안개가 짙은 섬은 에메랄드가 생성되기에 알맞아 에메랄드의 섬이 된다. 우리는 제비가 겨울 동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우고 먹구름이 소나기를 내리게 하며 사방이 어두워 캄캄해진다고 해도 우리는 태양이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제비는 다시 오고, 꽃은 다시 핀다.
이 땅의 만물에 생명을 키우기 위해 잠시 비가 내렸을 뿐이지 태양은 언제나 하늘에 떠 있다. 우리가 살아가노라면 제비 없는 겨울 같은 날을 맞이할 때도 있다. 언제나 태양 빛 아래 아름다움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소낙비 맞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날들이 있기 때문에 다음에 오는 날들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가온 고난의 날들을 견뎌 내지 못했을 때 우리에게는 어쩌면 영원토록 이듬해 오는 봄 같은 삶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사순절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받으신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오늘의 고난을 극복하는 능력과 삶의 지혜로 부활의 은총을 기다리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한다.
서임중 목사(포항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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