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원로 33인 비상시국선언

“정부와 대통령, 국민 앞에 용서 빌어야”
쇠고기 수입과 관련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독교계 진보권 원로들이 비상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섬김의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며 정부와 대통령이 국민 앞에 용서 빌 것을 촉구하는 한편,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이 친정권적 발언을 하는 것을 강력히 규탄했다.

“국민이 어리석다 할지라도 용서를 빌어야”
9일 기독교회관 2층에 모인 원로들은 ‘국민과 함께 가야 합니다’라는 선언문을 통해 “정부와 대통령이 국민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보며 우리 같이 나이든 사람들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상황이 평화롭게 마무리 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문을 열었다. 원로들은 “무엇이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는 화려한 수사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느냐”고 반문한 뒤 “오늘 국민의 눈에는 섬김이 보이질 않는다”고 대통령과 정부를 질타했다.
이어 “오만과 독선, 허위와 기만의 논리만이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며 “백보 양보해 국민이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권력의 시녀였던 기독교, 오늘날도 그런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이날 원로들은 친권력적 처신과 어용성 발언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성명서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 기독교계 장로라는 점에서 기독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이 더욱 비판의 자리에 서는 것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명박 정부를 진정으로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는 “기독교인이자 목사, 신학자로서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한국사회 앞에 보여지는 추태가 부끄럽다”며 “아직까지 친미반공 등의 이데올로기를 들먹이며 좌파, 사탄세력 운운하는 이들이 있는데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두려워하기를 바라며 하나님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의 길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명수 예장합동 전 총회장도 “과거 삼선개헌과 유신을 거쳐 5ㆍ6공화국의 군사정권 시절 기독교 원로들이 권력형 해바라기성 발언을 한 부끄러웠던 기독교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데,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과거의 행위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뉴라이트, 기독교사회책임 등의 친권력적 처신과 어용성 발언은 사회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제휴협력사 뉴스미션 제공


다음은 기독교원로 비상시국선언문 을 요약한 내용이다.

현 상황에 대한 기독교원로 비상시국선언문
- 국민과 함께 가야 합니다 -
1. 오랫동안 기독교에 몸담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온 나라에 펼쳐지기를 기도해 온 우리들은, 어린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촛불시위가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이루어 온 국민의 마음속에 진실과 정의의 외침으로 커져 가는 것을 한편으로 자랑스럽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 가운데 지켜보아 왔습니다.
우리는 이 사태를 보면서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들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상황이 평화롭게 마무리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랫동안 깊은 침묵의 기도를 드려왔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우리들이 더 이상 침묵으로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느끼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2. 지금 국민들의 외침은 단순히 잘못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 남짓 되었는데, 정말로 많은 기대와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그 기대의 반작용은 허탈과 분노로 남게 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총체적인 국정 난맥상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중략)
3. 왜 입니까? 국민들이 어리석고 모자라기 때문이겠습니까?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이 국민들이 정부가 100일 동안 나랏일을 보는 그 동안에 갑자기 어리석은 존재가 되었단 말입니까? 이명박 정부는 어리석은 국민을 만드는 정부였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정부 또한 이 국민의 어리석음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우리 눈에는 지난 백일 동안, 이명박 정부가 무슨 일로 국민의 가슴속에 멍을 들게 했는지 너무 쉽게 보입니다. 어떤 이들을 장관으로, 비서진으로 기용했습니까? 국가적 환경 재앙이 될지도 모르는 대운하를 추진하는 방식은 무엇이었습니까? 굶주리는 북녘동포들에게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으면 도울 수 없다는 우격다짐은 최소한의 민족적 자긍심, 최소한의 인간적 도의에 의심을 갖게 하지 않았습니까? 북을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였던 미국조차 식량을 지원하는 데 동족인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 민족을 이렇게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5.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와 대통령이 국민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백보를 양보해서 국민이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책임 있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져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중략)
6. 이제 이렇게 다 저질러 논 마당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위기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취임 초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직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자리는 국민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마음을 크게 열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국민과 함께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국민이 원하는 바입니다.(중략)
7. 우리는 이 자리를 빌어서 일부 수구 냉전적 사고를 가진 기독교인들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크게 꾸짖고자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 기독교계의 장로라는 점에서 많은 국민들은 기독교에 좋은 감정을 갖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이 더욱 비판의 자리에 서는 것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명박 정부를 진정으로 돕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위해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는 일에 교권을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교의 길을 막는 것이며, 교회를 죽이는 일이 될 뿐입니다. (중략)
8. 우리는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지금 정부와 교회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대내외적인 경제 상황에서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고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며 함께 더불어 사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진실에 기초해서 평화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내놓고 정부와 국민이 토론하고 대화함으로써, 더 성숙한 민주 사회를 이루어 우리 국민 모두가 건강하고 성실하게 맡은 자리에서 힘차게 일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정부와 교회 모두가 국민에게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함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의 위기는 바로 국민과 함께 할 때만이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국민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6월 9일
기독교(개신교) 원로선언 참가자
금영균, 김경재, 김상근, 김성수, 김소영, 김재열, 김지길, 김용복, 김창락, 김형태, 문대골, 문장식, 박경서, 박덕신, 박영모, 박철수, 박형규, 서광선, 오충일, 유경재, 윤문자, 이규상, 이만열, 이명남, 이해동, 이해학, 이현주, 이형기, 조화순, 최완택, 한명수, 홍근수, 홍창의 (33명)

200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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