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한옥마을 대표 오영화 목사

‘영성훈련과 치유가 있는 처치스테이(Church Stay)’
대한민국은 불완전한 개인주의 상태라고도 한다. 개인주의에 개인이 없고, 집단주의에 공동체가 없는 시대라는 말일 것이다. 옆집에 사는 사람의 얼굴도 모를 정도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물질의 풍요에도 마음이 허하기만 한 것은 우리가 새삼 공동체의 의미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서 공동체의 삶으로 영성훈련, 치유를 하는 곳이 있다. 우리 문화 속에서 영적인 쉼이 있는 지리산 한옥마을 오영화 목사를 만났다.


Q. 유교집안에서 자라 현대그룹에서 근무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성장이야기, 가정환경 또 어떤 계기로 목회자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집현전 학자였던 할아버지께서 단종이 억울하게 폐위되자, 지리산에 은둔하면서 마을이름을 속은리(은둔마을)라고 부르고 터전을 잡으신 후, 자손 대대로 500년을 살아온 곳입니다.
‘나라에 충성하며, 부모님께 효도하고, 친구지간에 의리’를 중요시 여겨왔던 저의 유교적전통가문의 교육은 지역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어린 시절부터 가문에 대한 자존감, 조상들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배우면서 익히고 성장했습니다.
특히 친구간의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조상들의 뿌리 깊은 이웃사랑의 정신은 훗날 직장생활, 사회생활, 목회생활에서도 인간관계에서 믿음과 신뢰, 희생정신이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 저의 내면을 형성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지리산 첩첩산중에서 살아왔던 저에게 있어서 ‘오씨집안’은 어린 시절의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선장이던 친척 덕택에, 세계 여러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선장인 집안 아재가 5대양 6대주를 누비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사진들을 찍어오셨고, 그 사진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반드시 세계로 진출하겠다. 아재처럼 되어야겠다.’라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현대중공업 이사로 계셨던 아재의 추천으로 현대에 입사했고 자재부, 기획부서에서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틈틈이 직장신우회를 조직해 성경공부 모임도 시작했습니다.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은 후, 좀 더 멀리 높이 나는 새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걸고 해볼 만한 것,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울산양육원 이봉석 장로님(울산노회장 역임)이 운영하시는 양육원(고아원)에 매주일 아침예배, 주일설교 담당과 현대 크리스천 신우회 총무로 봉사했는데,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늘 말씀과 신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부르심을 깨닫고 신학도가 되었습니다.

Q. 지리산한옥마을 대표로 계신데, 지리산한옥마을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의 문화를 접하고 배우며 살아왔습니다. 목사가 된 이후 30여 년 동안 ‘복음과 우리 문화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세상적인 문화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복음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을 연구하며 실천해왔습니다. 이제 그 결정체로 고향마을 새천년이 시작되던 해부터, 한민족 디아스포라 선교와 한옥을 통한 힐링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초대교회인 소래교회 모형을 본떠서 “ㄱ”자 형태의 한옥예배당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건축이 완공되면, 기존 한옥 7채와 함께 “Church Stay”로서 금요일에 들어와 주일 오후에 나가는 영성훈련과 영적치유프로그램 장소로 우리 문화를 통한 한민족 디아스포라 180개 나라 750만 명의 문화선교 장소로 활성화될 것입니다.

Q.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목사님의 소명과 비전, 그리고 예수전교회(예수전공동체)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A. 현재 3대 종교(기독교, 카톨릭, 불교)의 공동화두는, 공동체, 영성, 치유이며 이는 미래목회의 아젠다가 될 것입니다.
청년시절에는 두레마을 공동체, 가나안 농군학교, 이스라엘 키브츠 공동체 등 사회의 제도적인 생활공동체가 주된 관심사였다면, 세월이 지나면서 수도원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원, 성프란시스 수도원, 초대교부들의 사막의 수도원 공동체 및 영성공동체 등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일련의 모든 과정이 통합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변화와 함께 작은 영성공동체, 영적치유에 대한 사역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기포기가 있고, 거듭 옛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안에 있는 의와 진리의 새 옷으로 입고,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로운 여정에 있어서 신앙의 혁신 아이콘이 공동체라고 봅니다.
저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서울 서초동에서 목회를 하면서, 매주 지리산을 왕래하며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도·농 공동체를 추구해왔습니다. 서초구청과 자매결연을 맺고 정문에 농산물판매장에 지리산유기농을 직거래하고, 제가 관장으로 있는 서초구복지관을 중심으로 ‘지리산에 네 몸을 던져라!’ 는 구호로 힐링캠프를 열어 서울의 경제적 풍요와 농촌의 환경, 먹거리 교류를 통해 마음을 하나로 엮어 함께 살아가는 도·농공동체를 형성해왔습니다. 서울 서초동이라는 도시자원이 풍부한 마을과 지리산이라고 하는 농촌자원이 풍부한 마을이 서로 윈윈하며 상생하는 상생공동체를 꿈꾸어왔습니다. 지리산한옥마을은 그 센터입니다.
지리산예수전은 교회에서 영적인 현실을 붙들고 씨름하게 될 영적차원건강, 영에 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을 쌓는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지역사회 공동체에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소외된 이웃을 끌어안고 지역공동체의 성장을 견인하는 전문가 양성, 후배들이 목회현장에서, 현장과 동떨어진 영성훈련이 아니라 직접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목회의 동력을 갖는 신학대학교의 보조역할을 하는 평생훈련원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지난여름, 은사이신 장신대 김명룡 총장님과 교수님들에게 제안을 드렸고, 장신대 류해룡 교수님, 오규훈 교수님, 오방식 교수님과 학생들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을 2박 3일 동안 ‘영성은 산을 타고’라는 주제로 훈련한 바 있습니다. 또한 지난 5월과 10월,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교단지도자들과 아프리카 말라이 등의 외국 지도자들이 상호 방문 체험하였고 지역만들기, 사회적 기업 등은 훌륭한 선교적 모델로서 기대합니다.
예수전은 기도원, 수양관, 수도원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좋은 전통과 지혜로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님, 모세골공동체를 설립한 임영수 목사님의 지도, 류해룡 교수님의 이론적인 영향과 저의 체험이 결합된 공동체입니다. 이 땅에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없습니다.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지체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혜와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Q. 지난 2005년 한국농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14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촌교육·문화창달부문에서 수상하셨습니다. 당시 지리산여성농업인센터를 설립하시고 여성농업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운영비를 목사님께서 충당하셨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센터가 어떻게 운영 중인지 궁금합니다.

A. 당시 세상에서 소외받고 벼랑 끝에 서서 더 이상 소외될 것 없는 상태에 다다른 지리산지역, 소년·소녀 가장의 가정, 결손가정, 독거노인, 학대받는 여성, 다문화여성들을 위한 공동체장소와 사역으로 인해 상이 주는 의미를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농어촌희망재단과 남원시의 도움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자체건물을 신축하게 되었고(6억원), 정부의 후원으로 다문화교육원, 여성교육문화센터, 힐링캠프장, 지리산자연학교 등으로, 아름다운 지역공동체, 지리산 지역만들기 운동에 앞장서 나가고 있습니다.

Q. 광나루 84기 졸업생으로 선교학을 전공하셨고, 이스라엘과 스위스에 잠시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부산과도 연관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A. 1980년도 현대(주)를 사임한 후,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욥기 42:5), 인간을 이해하는 삶, 정직하고 자유로운 삶(요 8:32)을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살아왔던 지난 30여년의 세월은 결코 녹녹치 않은 삶이었습니다. 담임목회(20년) 외에도, 두레마을 공동체, 예수전 공동체, 가나안농군학교 라브거 공동체, 이태리 성프랜시스 수도원, 이스라엘 키브츠, 모샤브, 스위스 예수전도단 등, 그때그때의 목회생활에서 필요했던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적인 변화와 함께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이 길은 평안, 자유, 기쁨이 있으며, 지금이 최고로 행복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도 다 되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나를 변화시켜 나가야할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나의 모든 과정을 선교학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검증하고 되돌아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의 공부는 농림부와 한국무역공사, 이스라엘 대사관 도움으로 이스라엘 키브츠(협동농장)에서 단기 생활하면서 성서지리와 공동체를 공부하였으며, 와이즈만 대학을 통해 산학을 배웠습니다. 깊은 학문적 교류는 없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지혜, 살아가는 모습 등을 통해 지역만들기, 사회적 기업, 신앙공동체, 생활공동체, 선교공동체라는 단어를 맨몸으로 부딪쳐 배우고, 목회현장에 실험해보았습니다. 그로인해 국립 경상대학교 평생교육원 설립의 기초를 놓았고, 현재까지 석·박사 과정 평생교육론을 10년 동안 강의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예수전도단 DTS 과정을 통해서 영적인 자유로움과, 유럽의 수도원 방문을 통해 잿더미가 된 유럽교회이지만 잿더미 속에 이글거리며 남아있는 숯불, 수도원공동체를 보았고, 현재 사역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부산은 나의 목회의 출발지이며, 해운대출신의 간호대학교의 교수로 있는 아내를 키워준 장소이며, 신학교 재학 중 어려울 때 결혼패물까지 아끼지 않고 선뜻 내놓은 친구, 어렵다면 장기를 떼어주고 생명을 나눌 수 있었던 신앙의 동지들, 주님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생명을 나눌 수 있는 대장부들! 신학교 동기·동창들이 있는 곳입니다. 신학교 때부터 부산은행, 부산시청을 필두로 신우회를 조직하고 30여개 신우회가 되어 직장선교연합회를 개척, 평신도를 깨웠던 저의 첫 사명지이기도 합니다.
개척당시 많은 분들의 도움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무지하고 부족한 저를 통해 부산직장의 평신도를 깨우는 첫 운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면을 통해 당시 도움을 주셨던 선배목사님, 장로님들께 30년 만에 처음으로 감사의 인사올립니다. 그리고 지난 부산장신대 제5대 총장 후보로 출마했을때 후원, 기도해주신 동기, 동문, 부산교계 지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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