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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주 장로 (1947년생, 온누리교회 장로, 포크송가수, 문화선교사) |
- 의대를 그만두고 가수가 돼, 세시봉 결성
- 국내외 간증집회, 공연, 선교사역에도 활발한 활동
- 선교는 거룩한 유산으로 물려 받았고, 물려 줄 것
•의대에서 음악의 길로
이미 많은 대중에게 알려진 윤형주 장로는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경희대학교 학장을 역임한 윤영춘 교수가 부친으로, 신앙의 집안에서 성장했다. 특히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의 육촌 동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윤형주 장로의 부친은 아들이 신앙과 나라를 위해 분투했던 가풍을 고스란히 이어받길 원했다. 그래서 196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 후에 부친의 관여로 경희대 의대로 옮겼지만 윤형주 장로는 의사의 길이 아닌 음악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8년 당시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면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윤형주 장로는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서 친구 송창식을 만났다. 그와 남성듀엣 팀 ‘트윈 폴리오’를 창단해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익’, ‘축제의 노래’, ‘더욱 더 사랑해’ 등을 발표하며 한국최초로 통기타 문화를 개척했다. 그 후에도 세시봉을 만들어 가요계의 인기를 이어갔다. 1971년 동아방송 DJ를 위시해 MBC, CBS 등 방송 진행자로도 명망을 얻었다. ‘0시의 다이얼’ DJ, ‘연예가중계’ MC, ‘열린 음악회’ MC, ‘청소년 음악회’ MC 등 방송진행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광고음악계에 진출해 지난 37년 동안 국내 외 400개 기업의 CM송 1,400여 곡을 제작, 광고음악사의 큰 획을 그었다. 오란씨, 롯데껌, 새우깡 등 오랜 세월 지났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CM송을 제작해 매출에 큰 효과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근래에는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이장희 등과 ‘세시봉’ 바람을 일으켜 이들을 기억하는 40~70대 세대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준 바 있으며 지금도 인기리에 공연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나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나 그런 그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힘든 시절을 보내다가 1976년 다시 돌아온 그는 가장 먼저 목소리 재능기부에 나섰다. 윤형주 장로는 이사야 43장 말씀에서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이 그의 마음에 부딪혔다. 가슴 깊이 새겨진 말씀을 발견하고부터 목소리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기 때문이다.
윤 장로는 1981년 서울 영락교회 고등부 성가대 교사부터 봉사를 시작해 한국십대선교회와 홀트학교에서 이사와 후원회장으로 모금활동을 했다. 특히 장애인 단체나 병원, 호스피스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펼쳤다.
또한 선교활동이나 선교지원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1987년에는 멕시코 빈민가 선교활동에 나서 빈민아동들에게 찬양을 가르치기도 했고, 1994년도에는 전남 낙도선교를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복음선도 기증했다.
그는 작곡 솜씨를 살려 CM송을 잇달아 유행시키고 공연도 기획하지만 시간을 쪼개 봉사와 강연, 후원행사에도 참여했다. 특히 교도소선교활동을 통해 재소자들을 위로했다. 무엇보다 많은 찬양집회와 간증집회, 그리고 방송 등을 통해 자신의 삶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고백하고 문화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또한 복음송을 창작해 <복음송가모음집>(1991)을 간행했고, 그 밖에 신앙서적, 큐티집을 발간해 문서선교활동에도 기여했다.
최근에는 케냐의 의료선교활동에 참여하는 등 윤형주 장로는 현재 23개의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사 내지 임원으로 섬기는 단체들은 이랜드재단, 이랜드복지재단, I.A.K., 한국십대선교회, 한국해비타트, 아버지학교, 미문장애인선교회,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남북의료재단 등이 있으며 법무부 홍보대사, 세브란스 홍보대사, 독도의용수비대 홍보대사, 몰디브명예영사 그리고 1년에도 수많은 국내외 공연이나 간증집회를 열거나 선교활동에 참여한다.
온누리교회의 시무장로인 그는 선교에 대한 비전을 지니고 있다. 윤 장로는 향후 중앙아시아에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세우고 세계 각지를 돌며 교회와 선교사를 물질과 재능으로 돕는 순회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명예선교학 박사학위
가수이자 사업가인 윤형주 장로가 지난 8월 21일 고신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을 가졌다. 고신대학교는 평소 대중문화, 방송계, 광고계, 교계 전반에 걸쳐 선교적인 관점에서 건전한 문화를 창조하고 기획하며 제작, 출연한 공로를 인정해 명예박사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윤형주 장로는 처음에 이 박사학위를 극구 사양했으나 이 학위를 이 땅의 교계, 교인들의 부탁으로 알고 수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날 학위 수여식에서 윤형주 장로는 “제 목소리가 제 것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왜 십자가를 전하지 않느냐는 도전이 왔고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배운 의학적 지식이 도구가 되어 복음을 전하게 됐다. 우리 몸의 신경줄 하나 잘못 건드려도 몸에 마비가 온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이 찢어지고 피가 쏟아지는 고통을 감당하셨다. 이 고통이 제게 다가왔고 이 복음을 세상이 알도록 증인이 되어라는 말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하용조 전도사를 만나 사람에 대해 배웠다. 故 하용조 목사가 사람은 사람을 포기해도, 하나님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서 영혼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하용조 목사는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 제게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날 받은 명예박사학위에 대해 윤 장로는 “선교를 위한 채찍으로 여기겠다. 하나님께서 지난날보다 저를 더 부지런히 사용하실 것이다. 이 학위가 이 땅에 예수님을 전하고 크리스천들이 돌아오고 크리스천이 되어가는 도구로 사용되어지길 바란다. 거룩한 선교 사명은 거룩한 유산으로 물려받았고, 또한 물려주게 될 것이다. 제가 못 다한 선교는 제 자녀와 손주들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윤형주 장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작곡이라면서 “전광식 총장과 안민 교수와의 통화 중에 고신대 교가가 찬송가(내 주는 강한 성이요)인 것을 알게 됐다면서 고신대에 노래가 필요하다. 건학이념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내년 신학기에 선보이겠다”는 깜짝 발표도 했다.
오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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