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으로 은퇴를 준비합니다”
•고려학원 첫 장로 이사장으로
2007년 5월. 4년간의 임시이사체제에서 정이사체제로 회복된 고려학원의 첫 정기이사회에서 김국호 장로가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후 그에게는 늘 고려학원의 첫 장로 이사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그만큼 의미 있는 자리였으나 뒤따르는 무거운 책임감도 있었다. 김 장로가 이 일을 잘 수행해 내지 못한다면 후에 장로 이사장이 선출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시작한 이사장으로서의 행보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김 장로의 뜻과는 다르게 진행되기도 하고 오해와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김국호 장로에게 많은 스트레스가 쌓였고 심장병까지 오게 됐다. 그만큼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김 장로는 그 와중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해냈다. 기관장의 인사에서 병원장이나 총장을 구성원들이 직접 선출을 하다보니 파벌이 생기고 갈등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 인사 선출 방법을 바꿨다. 힘들었지만 옳은 일이라 믿었기에 과감하게 정관을 개정했다. 또한 복음병원 120억 원의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도 연대보증을 서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에 개인보증을 서서 돈을 빌린 것도 김국호 장로였다.
•고신 교단과 함께, 임시 이사체제 뒷이야기
그는 교단을 위해 늘 애쓰며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임시이사체제 당시 신주복 장로의 소개로 그의 누나 아들(조카)인 청와대 농업특보 이봉수 장로(김해대동교회)를 만났고, 지금 교단의 위기를 해결할 계획서를 보여주며 정이사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는데 교단의 한 일원으로서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어느 날 이봉수 장로가 신주복 장로를 통해 청와대에 올라오라는 말을 전했다. 이를 듣고 당시 총회장 권오정 목사와 김국호 장로는 청와대 실세인 변양균 정책실장실을 방문하여 유럽 순방중인 대통령께 드리는 12페이지 분량의 탄원서를 전달하였고, 임시 이사체제에서 벗어나야 하는 교단의 과거 정체성과 역사와 더불어 노무현 정권을 위해 기도했던 부분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변 실장은 면밀히 검토해 보겠으니 내려가서 기다려보라는 말을 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교과부로부터 들어오라는 전달이 왔다. 평소에는 교육부에 들어가면 오든 말든 상관 안하는 교육부 관료들이 이번에는 정중히 대했다. 법인 정상화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필요한 절차가 있다며 노조들의 인건비 부채를 갚겠다는 내용의 계획서와 더불어 병원 노조의 동의서를 받아오고 부도로 인한 부채 상환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임시이사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교과부의 요청을 충족시키기 위해 병원노조의 동의와 제반계획서를 제출하는데 2개월 정도 소요되었고, 교과부에서는 2007년 4월 초순에 정이사 후보를 선임하여 교과부의 허락을 받으라는 통보가 왔다. 이로서 4년여 만에 학교법인 고려학원이 교단의 품으로 다시 환원되었다.
그러나 교과부에 약속한 것들을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부도를 해소하고 법인산하 기관의 운영자금과 지급하지 못한 인건비 등을 약속대로 이행하려면 최소한 100억 원이 필요했다. 제1금융권인 농협으로부터 100억 원을 차입키로 하고 향후 발생할 이자 20억을 포함한 120억을 차입하는데 이사장의 관인과 이사장 개인의 보증서명이 없으면 대출이 불가하다는 말과 함께, 또다시 지난번과 같은 부도가 발생할시 이사장의 개인재산이 우선적으로 압류된다는 농협직원의 말을 듣고 깊은 고심 끝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심정으로 김국호 장로는 서명을 했다고 한다.
금액은 적지만 이런 유사한 일이 2년 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이 선 목사가 총회장 재직 시 복음병원에 환자 수혈용 혈액을 사입 할 돈이 없어 병원의 재정 파트에서 다방면으로 급전을 구해보려 하였지만 부도난 병원에 돈 빌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소식을 접한 김국호 장로는 서부산노회 조병래 장로에서 10억을 이자 없이 1개월만 빌려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김 장로님과 총회의 책임 맡은 분이 보증을 서면 이자 없이 2개월을 빌려 주겠다”고 하여 이 선 목사와 김국호 장로가 책임을 지겠다는 서명을 함으로써 복음병원의 중환자 방출소동을 막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학교법인의 위기가 시작되었던 2003년 이후부터, 운영하는 개인 사업보다 교단의 회복과 학교법인 정상화에 더 올인 했었습니다”라며 김국호 이사장은 당시를 떠올렸다.
•학교법인 정상화 감사예배 드려
아직도 직원의 급여가 다 해결되지는 못했지만, 학교법인 고려학원이 제 자리를 잡고 대학과 신대원, 그리고 병원이 질서가 잡히고 병원의 수익이 흑자로 돌아선 2010년 7월에 학교법인의 정상화감사예배 및 음악회를 열어 법인을 위해 많은 금액을 대여해준 교회, 성심껏 헌금한 교회와 개인에게 감사패를 드렸고 정이사체재 환원에 공이 큰 이봉수 장로에게도 감사패를 수여했다.
4년 만에 임시이사체제를 벗어난 예는 교육부산하 처음 있는 일로, 이것은 기적과 같은 이스라엘 회복의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교단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한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김국호 장로는 말했다.
동부산노회 장로회 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고신총회 부총회장,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이사장까지 김국호 장로가 모두 역임한 직책들이다. 이렇듯 평생을 고신 교단과 함께 하며 헌신했기에 그는 이사장 임기인 4년을 4개월을 채우지 않은 채 교단의 안위를 위해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그런 그에게 총회 상회권 정지 징계를 철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60년을 함께 한 교회
범천교회 장로로 곧 은퇴를 앞둔 김국호 장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범천교회에 출석했다. 당시 초대 목사였던 김갑석 담임목사와 함께 범천교회는 제대로 된 건물 없이 천막교회로 시작했었다. 그렇게 교회의 첫 출발점부터 함께 달려온 김 장로는 은퇴를 앞두고 1년 전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워낙 교회에 애정이 깊었기 때문에 교회 일이라면 앞장서서 일했습니다. 은퇴를 해야 할 나이가 되니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후배들과 또 다른 장로님들을 뒤에서 묵묵히 도와드리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 전부터 ‘내려놓음’을 연습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김국호 장로는 교회와 함께 한 60년을 회상하며 미소 지었다.
김 장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범천교회는 첫 번째 성전건축이 있었다. 그 역시 어리지만 건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 등에 흙을 짊어지고 나르는 등 직접 건축을 돕고 나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갈등이 생겼고 교회는 오랜 기간 건축을 완성하지 못한 채 흉흉한 모습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김국호 장로는 이런 교회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교회가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을까 싶었고 그 일은 가슴깊이 각인됐다.
그래서일까. 1997년 두 번째 성전 건축 시, 건축위원장을 맡아 교회 건축에 앞장 선 김 장로는 그해 연말에 IMF로 인해 건축이 힘들어진 와중에도 모든 책임을 지고 교회 건축에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지금껏 말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했다.
“교회 건축은 해야 하는데 IMF로 인해 상황은 악화만 되고 해결방법이 없었던 중에 뜻하지 않게 제가 하던 사업에서 10일간의 짧은 작업에 2억 원의 순수익을 내게 됐습니다. 순간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에게 이 돈을 교회당 건축에 쓰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2억 원을 그대로 헌금했습니다. 목사님께 무명으로 해달라고 말씀드리며 성도들에게 교회 건축에 함께 마음을 모으자는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후에 온 성도들이 나서서 함께 참여했고 결국 아름답게 건축을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천막교회에서부터 시작했기에 교회를 짓겠다는 강한 마음이 있었고 이 모습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그는 말했다.
•은퇴를 앞두고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김 장로는 그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되새겨보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목표는 같을 지라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서로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다를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포용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습니다”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는 김국호 장로. 그는 지금도 최선을 다해 그의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다져나가고 있다.
은퇴 후 해외에서 선교하며 살고 싶었는데 지병으로 인해 그러지 못하기에 크게 아쉬워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김국호 장로이기에 그의 은퇴 후 여정도 아름다운 찬양이 끊이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담 : 신이건 사장
기록 : 최 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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