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주일) 오후 2시 초읍교회에서 교회 출석 30년, 장로시무 22년 만에 원로장로 추대식을 함으로써 아름답게 장로직을 은퇴한 강국만 장로(광복포럼 고문, 전 부산동노회 장로부노회장)를 지난 11월 8일(금) 그가 경영하는 사업장 사무실에서 만나 신앙여정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행한 믿음의 행로들이 좀처럼 자랑할 것도, 얘기할 것도 없다며 계속 사양했지만 여러 번 권유해 겨우 대화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편집자주>
•첫 교회 출석은 스스로 찾은 교회
경남 밀양의 조용한 평촌마을에는 미국 선교사가 개척한 평촌감리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강국만 장로의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믿는 가정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신을 모시고 있는 동네점쟁이였다. 강 장로가 고교2년 시절 보리를 타작할 무렵의 어느 여름 밤, 동네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가정교회에서 찬송가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호기심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찬송소리가 점점 커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찬송이 들리던 가정교회의 문고리를 잡고 조용히 열어보니 몇몇 어른들과 아이들이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용기가 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새벽 4시 30분쯤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교회 쪽으로 향했고, 호야불(남포등의 경상도 사투리) 아래에서 찬송을 따라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호기심 찬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니 찬송가와 성경을 건네주었다. 교회 안에 있던 동네어른들은 “아무개 점쟁이 아들이 교회에 왔다”면서 신기하듯 말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기도소리를 듣고 있었고 마치 구경꾼마냥 있다가 교회를 빠져나왔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교회 안에서 그가 화젯거리가 되었다. 강 장로의 할아버지는 일찍이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고, 그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유명한 점쟁이로, 그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었다.
교회를 처음 갔던 다음 날, 잠을 자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 많은 어느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너는 왜 교회에 안 가니? 교회를 다녀보렴”이라고 하지 않는가.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이상하다는 생각에 이후 교회를 한 번씩 나가게 됐고, 그것을 계기로 계속해서 교회에 나가게 됐다.
그러나 강국만 장로가 직장을 부산으로 다니게 되면서 교회보다는 천리교에 빠졌고, 한동안 영도에 있는 천리교 본부에 나가게 되었다. 재산을 신에게 바쳐야 한다는 말에 황당함을 느끼고 다시는 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 후 강국만 장로는 회심하고 다시 교회를 나갔다. 그의 부인인 박경애 권사가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 아래쪽에 위치한 동광교회에 출석하며 김정광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후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강국만 장로의 부인 박경애 권사가 중구 광복동 당시 미화당백화점에서 화장품 매장을 차리며 사업이 시작됐다. 여성을 상대로 시작한 사업은 점점 매출이 올랐고, 강 장로는 직장을 그만두고 부인이 하는 사업에 함께 하게 됐다. 80년대 컬러TV 보급으로 색조화장품이 출시되면서 화장품사업의 매출은 상승했고, 주 고객층도 여성에서 남성까지 확장되면서 국내 유명 메이커 화장품회사들이 강 장로의 매장에 납품하려고 경쟁하다시피 했다. 때로는 강 장로 부부가 출석하는 교회나 고향까지 들먹이며 찾아오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
강 장로 부부는 어디까지나 ‘신뢰와 정직’을 사업의 기반으로 삼으니 재물이 풍족하게 됐고, 지금은 광복동 금싸라기 땅에 사업을 확장하고 건물 3개를 매입할 만큼 복을 받았다.
•광복동 터주대감소리 들어
한 달 화장품 매출이 6,000~7,000만 원 정도로, 매장에는 고객들이 늘 붐볐다. 백화점을 두고 광복동 화장품 가게로 올 정도였다. 그 당시 만해도 광복동 거리는 겨우 원산면옥만 이름이 기억될 정도로 상가들이 한산하기만 했다.
문정수 부산시장 시절, 광복로 상가를 대표할 모임이 없었다. 상가번영회라는 이름 대신 광복포럼이라는 현대식 이름으로 변경하고 옛 굴지의 광복로를 다시 재건할 계획을 세우기 위해 구청과 의논했으며, 광복로문화포럼의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승학 장로, 김익태 장로(호산나교회)가 연이어 광복포럼을 이어갔다. 정부로부터 82억이라는 보조금을 받아 광복동 거리의 가로등, 간판을 바꾸며 광복로 재정비에 들어갔다. 이것이 오늘날 광복로에서 매년 열리는 부산크리스마스트리축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부산크리스마스트리축제는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의 트리문화축제로, 광복포럼회원들은 이 일의 숨은 공로자가 강국만 장로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부산동노회 장로회회장, 남선교회연합회회장, 장로회회장, 부산동노회 장로부노회장 등을 역임할 만큼 교계에서도 남달리 헌신해왔다. 무엇보다 강 장로 부부는 초읍교회의 존경받는 장로와 권사로 인정받고 있다. 아들 강경순 씨는 부산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MBA 과정을 공부하는 중에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되어 졸업 후 삼성전자 본사에 들어갔다. 지금은 삼성전자 중국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것,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주신 것, 교회를 섬길 수 있게 하신 것 등 모두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강국만 장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가 지나온 여정을 되돌아봤다.
신이건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