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유산보다 교육의 유산, 교육 유산보다 신앙의 유산을”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오롯이 섬김의 삶을 살아온 송산 박재석 장로(물금교회 원로).
얼마 전 고신대학교 출판부에서 박재석 장로의 팔순 기념문집 “꿈과 열정으로 살아 온 80년”을 발간했다. 헌신적인 봉사를 기념하기 위해 편찬된 이 책이 다른 무엇보다 후손들에게 모범이 되고 나아가 도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박재석 장로는 하나님의 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드린 것 밖에 없다고 말하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고아와 장애인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무궁애학원부터 장학재단 설립과 고신대학교 및 교회 후원까지 오직 한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하고 봉사한 박재석 장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사업가로서의 박재석 장로
박재석 장로가 목회자를 꿈꾸며 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우연히 양산군 물금면에 위치한 6.25 피란 단체(고아원) 시설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1962년 12월 성탄절을 맞아 그 시설에 간 박 장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양실조로 인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마른 상태인 30명의 고아들을 보게 된 것이다. 가슴 아픈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박재석 장로는 자신이 소유한 집을 팔아 이 시설을 인수했다. 그 당시 그의 마음속에는 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것과 더불어 메마른 영혼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렇게 1963년 2월 사회복지법인 무궁애학원을 인수해 목회자의 길이 아닌 사회사업가로서의 길을 가게 됐다.
시설을 새롭게 개선하고 단장해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한 박재석 장로는 자신의 자녀들과 무궁애학원에 있는 고아들을 똑같이 먹이고 입히며 함께 키워냈다. 정부나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운영에 어려움도 따랐고 부족함도 많았다. 그래서 박재석 장로는 수리, 보수를 직접 하는 것은 물론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세월이 흘러 전쟁고아가 거의 없어질 무렵이 되자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장애인 재활시설로 무궁애학원을 새롭게 전환시켰다. 현재 무궁애학원은 13,000평 대지에 생활시설과 직업재활시설, 초·중 특수학급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일반인 아파트 속에 거주하며 통합생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박재석 장로는 장애인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편견이 없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스스로에게는 조금의 낭비도 없이 아끼고 절약하면서도 이웃과 약한 자에게는 한 없이 너그럽게 베풀기를 좋아했던 박재석 장로는 나라에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상했고, 경상남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과 경남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사회복지를 위해 큰 역할을 감당했다.


•장학재단 설립자로서의 박재석 장로
박재석 장로는 “인간에게 제일 시급한 문제는 의식주이고, 이것이 해결되면 교육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평생 배워야만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재석 장로는 항상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았고 다른 이들도 그러길 원했다. 그래서 2005년 7월 송산박재석문화장학회를 설립하여 매년 기독교 인재양성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남은 인생을 교육사업을 위해 쓰고 싶다고 할 정도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자녀들에게도 장학재단을 더욱 키우고 성장시키는데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박재석 장로는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 놨는데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법인과 장학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한 교회의 장로로서의 박재석 장로
물금으로 이사 와서 물금교회를 섬긴지 50년이 넘은 박재석 장로는 다른 무슨 일 보다 교회일이 우선이라며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교회 일에 발 벗고 나서며 아낌없이 내주었다.
사회사업을 위해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 온 박재석 장로는 목욕탕 경영을 하기도 했는데 목욕탕을 건축하기 전에 교회를 먼저 건축하기 위해 헌금하는 것은 물론 교회의 각종 대소사를 자기 일처럼 챙기며 헌신했다. 또한 교회를 위해 부지를 헌납해 새 예배당과 주차시설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박재석 장로가 이렇듯 교회를 그 무엇보다 더 귀하여 여긴 것은 그의 삶의 원동력이 바로 신앙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 박재석 장로는 매일 같이 새벽기도회를 나갔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새벽기도회를 가면 새 힘을 공급받는 느낌이 듭니다”며 새벽기도회를 통해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두고 살아 온 박재석 장로는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을 굳게 붙든다면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물질의 유산보다는 교육의 유산을, 교육의 유산보다는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며 신앙생활의 모범을 몸소 실천했다.
•꿈과 열정으로 살아온 80년
지난 8월 10일 토요일 오전 11시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박재석 장로 산수기념 축하회는 그의 자녀들과 가족들, 그리고 고신대학교 송산 박재석 장로 산수기념문집 편찬위원회의 주최로 이뤄졌다. 고신대학교에서는 학교를 위해 송산광장을 만든 것은 물론, 물심양면 지속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은 박재석 장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념문집을 편찬하기로 결정하고 위원회를 만들어 출판하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꿈과 열정으로 살아온 80년”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기록하여 문집으로 편찬해 기념한다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일생을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온 박재석 장로이기에 모두의 축하 속에 이런 기회가 마련될 수 있었다. 박재석 장로는 산수기념 축하회를 통해 다른 무엇보다도 많은 후배들과 후손들이 도전을 받고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며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 드린 박재석 장로의 남은 날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거하기를 바란다.

최 선 기자

2013.08.24
지난 기사를 보실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110년 전, 항구 서쪽에 복음으로 세워진 부산 항서교회



-암울했던 시대에 복음의 빛으로 세워진 교회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학사교회’라고 불리던 교회
-지역사회를 품고 다음 세대와 함께 할 ....

 

2015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 준비위원장 이성구 목사



Q 기존 ‘부활절연합예배’라는 이름에서 ‘예수부활 부산연합축제’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A 기독교 최대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

 

삼일교회 성도가 공개한 송태근 목사 청빙 일화 ‘주목’

▲송태근 목사가 삼일교회 청빙을 받아 부임하던 시기, 강남교회가 보여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새삼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삼일교회)


삼일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가 3년 전 송태근 담임목사의 청빙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시기 강남교회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