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관표 안수집사와 아내 윤현경 집사는 2010년부터 필리핀 민도르 지역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국내에서도 기독교기관 등을 섬기고 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6세 때 부산으로 온 홍관표 안수집사(호산나교회)는 손꼽히는 류마티스 전문의로 토성동에 위치한 홍관표내과의원의 원장이다. 초등학교 시절 교회를 처음 다니게 됐지만 부산대학교 재학 시절 한진환 목사와의 만남을 통해 진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됐다. 졸업 후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때 만난 박상은 장로(현 안양샘병원 원장)와 양승봉 선교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 병원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부산 아미동 지역 의료봉사를 10년 넘게 하게 됐고, 인턴 시절 만나 결혼한 아내 윤현경 집사(부민교회 윤은조 원로장로 둘째 딸)와 함께 출석하던 부민교회에서 캄보디아와 태국 등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오게 됐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흥교회 의료봉사 팀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며 요청을 들어왔고, 필리핀 민도르 망양족이 있는 지역으로 가게 됐다.
•필리핀 민도르와의 만남
일명 ‘타이거 박’이라고 불리는 박운서 장로(전 통상산업부 차관)가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서 그 때 처음 박운서 장로와 만났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부터 꼬박 하루가 걸려 도착한 목적지를 처음 본 순간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파 온 것이다. 태어나 첫 돌이 되기 전에 절반가량의 아이들이 죽는 곳이었다. 반군의 영역에 포함된 곳으로 위험한 지역이었지만 박운서 장로는 그곳에 교회와 학교를 세워 주민들을 위해 섬기고 있었다. 박운서 장로가 혼자 5년간 사역을 하면서 의사가 와서 진료를 해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함께 사역을 하면서 홍관표 집사는 박 장로와 생각이 비슷한 것이 많고, 그의 사역에 도움이 되고자 계속해서 망양족이 있는 그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가기 시작했다.
사역지의 사람들은 의료봉사팀이 다녀간 후 다시 오랫동안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고, 그것을 안타까워하던 박운서 장로는 현지 커뮤니티를 세우는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진료소를 세우고 주민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센터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는 중에 홍관표 안수집사를 만나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모리아 자립센터’라는 이름의 건물을 세우고 농사와 교육 등을 지원하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현재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건물은 세워지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설 관리를 비롯하여 의료 인력의 파견도 어려운 실정으로 이러한 것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홍 집사는 “우리가 가지 않더라도 의료가 매우 필요한 지역으로, 사람이 필요한 곳입니다”이라며 고민하고 기도 중이라고 말했다.
사역을 하는 중에 어려움도 있었다. 함께 의료봉사를 갔던 윤현경 집사는 ‘정말 아름다운 지역이었지만 지금까지 가서 선교활동을 했던 지역 중에서 가장 열악한 곳’으로 기억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역지가 반군영역이었기에 반군이 움직이면 사역지에서 급히 내려와야 했다. 윤현경 집사는 “너무 힘든 사역이었기에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도 다시 가지 말자고 말했을 정도였으니까요”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윤 집사는 그곳에서 돌아온 후 감기몸살로 고열에 시달리며 고생을 했다. 회복과정에서 알게 됐는데 말로만 들었던 뎅기열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뎅기열을 앓고 난 후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필리핀 민도르 망양족에 대한 부담이 생겼다. 그 지역 아이들은 늘 뎅기열로 고생하고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쏟았어요. 제가 너무나 고생했던 그 병을 그곳 아이들은 늘 걸린다는 것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 마음을 주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윤 집사는 “아마 뎅기열에 안 걸렸으면 다시 가지 않았을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고백했다.
또 우리나라와 다른 기후변화로 고생했다. 갑작스런 스콜(squall)현상으로 길이 강으로 변해 현지인의 도움으로 건너게 되는 일도 있었다. 계속된 사역에 정찰 나왔던 반군들도 진료를 받게 된 경우, 그 반군들이 사역지를 보호해주는 등의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나님의 적재적소 도움을 경험한 홍관표 안수집사와 윤현경 집사 부부는 똑같이 고백한다. “갈 때마다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주셔서 계속해서 그곳에 가게 됩니다”라고.
•‘주가 쓰시겠다 하라’
홍관표, 윤현경 집사 부부는 해외봉사로 섬기면서 민도르 지역 외에도 교회건립을 위해 돕고 있다. 또한 국내 기독교 방송전파선교사로 후원하고 있다. 윤 집사는 힘들고 낙심될 때 기독교방송을 통해 말씀과 찬양을 들으면서 치유 받는 큰 은혜를 경험했다고 한다. 윤 집사는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어내지 않는데 극동방송을 통해 새 힘을 얻을 때가 너무 많아요”라고 전했다. 그러한 마음으로 기독교방송국이 부산에서 사옥을 짓는다고 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후원을 했다. 자녀들도 후에 같은 마음으로 이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며 후원하고 받은 성경책을 세 아이들에게 가보로 물려 줄 생각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극동방송국에서 홍관표 안수집사의 병원으로 찾아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방송국과는 관련이 없던 부부는 의아해 했지만 방송국 사람들을 맞이했다. 방송국에서 온 사람들은 타 지역의 방송국건립을 두고 기도하는 중 방송선교로 후원 중인 홍관표 안수집사의 가정을 마음에 주셨다는 것이다. 윤현경 집사는 “방송국에서 오신 분들도 방송과 관련이 없는 저희 가정에 대해 하나님께서 왜 마음을 주시는 것인지 계속 기도했대요. 기도하면서 그냥 찾아가보자는 마음으로 저희에게 왔다고 말하더라고요”라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아무런 연관이 없던 일이라 부담스러웠고 방송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식사대접만 해드렸다.
찾아온 손님들이 돌아 간 후 그 일에 대해 ‘이건 아니다’라고 여겼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마음에 말씀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하셨던 말씀,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마21:3)’. 윤현경 집사는 “제가 오래 전 제자훈련을 받을 때 이 말씀이 숙제였어요. 그런데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하지 않았는데, 그 말씀을 계속 생각나게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씀을 남편인 홍관표 집사에게도 동일하게 주셨다. 부부는 서로가 받은 동일한 말씀을 나눈 뒤 바로 3,000만원이라는 큰 금액을 후원하게 됐다. 이뿐아니라 필리핀에 선교사로 간 전용득 장로(부민교회)에게 4,000만 원의 선교비를 준 적도 있다.
도움의 손길을 베푼 후에는 그 사실에 대해 기억을 하지 않는 것이 홍관표 안수집사 부부의 철칙이다. 방송국에서 감사함에 찾아오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연락을 거절했다. 사람의 마음이 자기가 무언가를 하면 나중에 섭섭한 마음이 들게 된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또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억나지 않게 하신다고 말하며, 부부가 동일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에 신기할 정도며 “성경에 믿지 못할 말씀이 없다는 것을 계속 깨닫게 됩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홍관표 안수집사는 의사라는 직업 외에 좋아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홍 집사는 농장 일을 2006년부터 시작해 이제는 수확하고 있다고 한다. 홍관표 안수집사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선교지에서 진료를 계속하면서 농작물을 키우고, 그곳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습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 윤현경 집사는 “필리핀의 박운서 장로님께서 선교지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셨어요”라고 덧붙였다. 출석중인 호산나교회에서 사역하는 캄보디아 선교지역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 홍 집사는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를 사용하시기에 비전을 가지고 때가 되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준비해야 합니다”라며 홍관표 안수집사는 소망하고 있다.
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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