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롯데호텔의 복음선교사, 이동호 사장


- 지난 11월 14일, 16년만에 부산 롯데호텔 신우회 창립예배 가져
-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지는 계기 마련
- 할머니의 눈물어린 기도로 여기까지…

Q 먼저 부산롯데호텔 창립을 축하드린다. 과거에 있던 롯데 호텔 직원이 신우회 창립을 위해 기도해 온 걸로 알고 있다. 근데 이동호 사장이 오고 나서 그 기도가 현실이 됐다. 신우회 창립과 관련하여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다.
A 서울에 있을 때 신우회를 섬겼다. 41년 동안 서울에 있었는데 부산으로 오게 되어 서운한 맘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었다.
부산에 내려와 보니 전임 사장님이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분이 인수인계 할 때, 부산은 첫째 불교도시, 둘째는 골프도시, 세 번째는 야구도시라고 했다. 근데 내가 예수를 좀 특별히 믿고 골프를 안치니까 걱정을 하더라. 술도 안 먹는다고 하니까 괜찮겠냐고 물어보시길래 저는 3대째 신앙을 해왔고, 제가 가는 곳은 다 잘 됐다고 말씀드렸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참 많아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신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회사가 16년이 됐는데 믿는 사람들 모임이 하나도 없고 1년에 한번도 그런 모임 없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먼저 울산 롯데호텔에 신우회를 작년 1월에 만들게 됐다. 그리고 작년 연말쯤 부산 롯데호텔에 신우회를 만들게 됐다.

Q 신우회 창립 예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A 지난 11월 14일(월)에 창립예배가 있었다. 당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창립예배를 축하해 주셨다. 호산나교회 원로목사님이신 최홍준 목사님, 부산 CCC대표 박달수 목사님, 부산 롯데호텔 사목 박상철 목사님, 이해웅 서울 롯데호텔 신우회 회장님, 서울 롯데호텔에 계셨던 장로님 2분도 내려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Q 현재 신우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부산 롯데호텔 안에서 신우회 창립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 매주 목요일에 모인다. 보통 10명 이상, 많이 모이면 20명 정도 모인다. 지난 성탄절에는 성탄예배도 같이 드렸다.
일단 신우회를 창립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또한 신우회를 통하여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이 더 확립된 거 같다.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이 더 드러나기 시작했다.

Q 고향은 어디인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게 된 건가?
A 고향은 경남 하동이다. 하동에서도 아주 시골이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마을이었다. 나의 신앙의 시작은 할머니로부터 시작됐다. 할머니께서 예수를 믿으셨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예수를 믿고 우리 집안으로 시집을 오셨다.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오셨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할머니 집안은 당시로 치면 개혁적인 집이었다. 할머니 동생 분은 신학을 해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고, 조카는 진주성남교회 목사를 했다. 그런데 우리 친가 쪽은 마을 유지에 양조장을 운영하는 완전 보수적인 집안이었다.
할머니께서 시집을 오셔서 저의 아버지와 고모를 낳고 난 후 할아버지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셨던 거 같다. 할아버지는 당시 향교의 수장으로 계셨기 때문에 듣자마자 집안 망할 일이라고 하시고, 할머니를 쫓아버리셨다. 별거에 들어가신 거다. 그때 할머니가 23살 때였다. 그 이후 할머니는 계속 혼자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산 하나를 넘어야 갈 수 있는 예배당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성탄예배나 주일예배 때는 나를 꼭 데리고 가셨다. “동호 니는 장남이니까 꼭 가야한다”면서 할아버지 눈치를 보시면서도 꼭 데리고 갔다.
할아버지는 제삿날만 되면 나를 찾으셨다. 장손이라고 틈만 나면 나를 앉혀 놓고 제사지내는 법, 과일 놓는 법, 지방 쓰는 법 등을 가르쳐 주셨다. 근데 제삿날만 되면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교회를 가셨다. 그리고 제삿장에 차렸던 음식도 절대 못 먹게 하셨다. 할아버지가 집안에 있는 성경책이랑 찬송가를 태우신 적도 있다. 그렇게 해도 할머니는 웃으면서 별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다시 성경책과 찬송가를 구해오셨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해도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원망하시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너희 할아버지가 몰라서 그러신다. 어쩌겠냐?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하시면서 천국에 상이 크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할머니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돌아가셨다.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그것 가지고 동네 사람들이 예수 믿어서 일찍 죽었다고 수군거리고 그랬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나 죽어도 예수 믿어라. 나 죽으면 제사 지내지 마라. 나 죽으면 교회장으로 치러 달라”는 3가지 유언을 남기셨다.

Q 그럼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A 그러고 3년 뒤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시 진주중학교 3학년을 다니고 있을 때다. 돌아가시기 1주일 전쯤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그날따라 할아버지가 좀 이상하셨다. 앉으라고 하시더니 “너희 할머니가 그렇게 내 한테 고생을 하면서도 예수 믿다가 죽었지?”라고 물어보시길래 가만히 있었다. 그러시더니 “내가 그래서 요즘 이걸 보고 있다”고 하시면서 성경책을 보여주시더라. “이게 뭐길래 그렇게 목숨처럼 봤는지 궁금했다”면서 뒤적거리셨다. 그러고 1주일 뒤에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다. 집에 들어가 보니 책상에 성경책이 있었다.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 이후 진주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거기서 혼자서 고대 법대에 합격했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할머니의 눈물어린 기도의 힘인지도 모르고 나는 천재라고 생각하고 다녔다. 고대 법대에 들어가서는 술 먹고 노래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군대를 들어갔고 제대 이후에 사법시험을 쳤지만 떨어졌다. 이후 롯데호텔에 입사했고 결혼하게 됐다. 당시 집사람이 학원가에서 유명한 영어 교사였는데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결혼하고 나서 연속해 딸만 둘을 낳게 됐다. 어머니가 집안의 맏며느리가 아들을 못 낳으면 어쩌냐고 그러셨다. 그때 집사람이 맘 고생을 많이 했다. 어느 날은 자기도 모르게 둘째 딸애를 엎고 “하나님 저에게 아들을 주세요”라고 기도를 했단다. 그래서 내가 왜 부처님한테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기도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고 하더라. 그러고 진짜 아들을 낳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내가 스스로 불교 관련된 물건을 다 태우거나 남을 주고는 영락교회를 출석했다. 저도 그렇게 같이 다시 교회를 가게 됐다.
그 이후에는 단 한번도 주일 성수를 범한 적이 없다. 해외에 가서도 주일 성수는 꼭 지켰다. 국내 출장을 가도 따로 시간을 내어 지켰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 너무나도 많았다.

대담/ 신이건 사장
정리, 사진/ 김상섭 기자

20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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