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진 담임목사와 이재준 장로의 끈끈한 만남 33년

60주년 받은 은혜 3천명 전도로 보답하자! 로 나아가는 부산영락교회

60주년기념 이재준 원로장로 추대를 한 지난 3월 6일 오후 시간에 윤성진 담임목사는 “부산영락교회에 온지 33년, 당회장 23년 동안, 오늘날까지 지켜 온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다음은 이재준 장로님의 한결같은 동역과 부족한 종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이었다. 장로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란 솔직한 고백을 인사말을 통해 전했다. 윤성진 목사와 이재준 장로의 영적 관계에 대해 교회주변 관계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관계보다 더 진한 신앙적 관계를 형성해왔다고 본다. 늘 이 장로는 겸손하면서 나이가 적은 목사님을 영적 부모처럼 여기며 주의 종을 섬겨왔고 인격적인 존경을 해왔다. 윤성진 목사 역시 부모님 같고 신앙의 선배 같은 자상한 어른으로 이 장로를 모셨기 때문에 오늘날 부산영락교회가 성장하며 발전해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날 시정으로 바쁜 허남식 부산시장이 직접 와서 축사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임현모 장로(전 CBS부산본부장)는 “이재준 장로의 평소 겸손한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이 관계를 잘 맺고 있었다”라고 했다.
대외적으로도 부산영락교회 위신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재준 장로를 만나서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신이건 사장(이하 ‘신’) : 반갑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윤성진 담임목사님과 이재준 장로님과의 관계, 장로님이 겪어온 과정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윤성진 담임목사님과 이재준 장로님의 인연이 깊은데, 얼마나 됐나요?
이재준 장로(이하 ‘이’) : 제가 고등부 부장할 때, 윤성진 목사님께서 지도 교역자로 오셨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전도사와 부목사를 거쳐 담임이 되셨는데, 그때부터 만남을 가진지 33년이 됐네요.
신 : 그럼 당회장으로 모신지는 얼마나 됐지요?
이 : 23년 됐습니다.
신 : 23년을 모시면서 어떤 좋은 점들을 보셨습니까?
이 : 윤성진 담임목사님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내용과 생활이 일치하는 분입니다. 인격적으로 무척 신실하십니다. 오랜 세월 사역을 하며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개발하시며 교회가 진취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근간에는 양산성전을 세워 두 성전 목회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신 : 담임목사님의 영성은 어떤가요?
이 : 본인의 영성을 위해 무척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40일 금식도 하시고, 정기적으로 기도원에서 영성을 깊이 하는 훈련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잘 흘려보내십니다. 알파제자대학을 통해 교회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항상 교회가 도입해야 할 프로그램을 앞서가며 준비하십니다.
신 : 당회원간에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장로님께서는 그것을 잘 조절하셨다고 들었는데, 담임목사와 장로간의 마찰을 어떻게 잘 조절하셨나요?
이 : 저는 담임목사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합니다. 신앙적으로 깨어 있고 앞서가는 분이기에 영적인 면에서도 무척 존경합니다. 당회 운영 과정에서 일치하지 않을 때가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목사님이 하고, 장로들은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을 실천해왔습니다. 목사님께서도 항상 열린 마음으로 장로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셨습니다.
당서기란 직책은 목사님과 장로들의 의견을 조화롭게 수렴하는 역할이 큽니다. 당서기가 잘못하면 갈등이 더 심화됩니다. 저는 그 역할을 잘 해나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신 : 정책당회는 어떻게 합니까?
이 : 1년에 한 번합니다. 한해 목회계획을 축조하고 심의합니다.
신 : 분규를 겪었는데, 이것을 통해 교회가 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 분규는 큰 상처였습니다. 하지만 풀무 불같은 연단을 통해 정금 같은 교회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화합과 영화를 이뤄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윤성진 목사님께서 부목사로 있을 당시, 담임 목사님을 잘 보필했습니다. 담임으로 부임하시고도 원로 목사님을 친 아버지처럼 모셨지요.
신 : 그런 모습을 보고 당회원들이 결정을 한 것이군요.
이 : 전도사와 부목사로 사역한 사람을 담임목사로 세웠다는 것은, 교인들이 그만큼 인정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도사와 부목사로 사역을 하시며, 지금까지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계십니다. 한국교회에서도 드문 일이고, 이것이 하나의 좌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 : 그렇지요. 하나의 모델이 되시는 분입니다.
이 : 다른 좋은 교회에서도 제의가 많이 들어왔는데, 목사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분규과정에서 떠나지 않고 수모도 많이 당하시며, 교회를 지켜오셨습니다. 교인들은 이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신 : 분규 당시 교인은 얼마나됐습니까?
이 : 4~5백명쯤 됐을 것입니다. 지금 교인은 2~3천 명입니다.
신 : 그렇다면 윤 목사님 오시고 부흥하게 된 거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이 : 초창기가 시련기였다면, 윤 목사님께서 오신 후 부흥기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신 :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당회를 하며 충돌 있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한 장로님만의 비법이 있다면요?
이 :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저는 목사님의 얼굴만 봐도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직접 나서서 말하기 힘든 것들을, 당회서기가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견이 상충될 때 부딪치지 않도록 장로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역할을 제가 맡았습니다. 이것이 당서기가 할 일 이니까요. 목사님을 존경하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신 : 윤 목사님께서도 장로님을 추대하며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재준 장로님이 아니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다는 말을 하셨지요.
이 : 저는 평신도로 목사님을 당연히 섬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으로 항상 목사님을 대하다 보니, 그런 좋은 말도 듣게 되네요.
신 : 이번 표어가 “60주년 받은 은혜 3천 명 전도로 보답하자”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이 : 영혼구원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도심지 교회의 부흥이 쉽지 않은 것도 있는데, 우리 교회가 이렇게 부흥하는 것은 담임목사님의 눈물과 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부강사를 꺼리는 목사님들도 많은데, 저희 담임목사님께서는 이런 부분에 있어 무척 열려있습니다. 교인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니까요.
신 : 그렇군요. 윤성진 담임목사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서민적이고 양떼를 돌보는 다정다감한 목회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 성품이 그렇습니다. 청년기 때 중병에 걸렸었는데, 그때 치유의 은사를 입었다고 합니다. 저도 많은 목사님들을 알고 있는데, 신실성 없는 분들을 본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가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교인들에게 영적파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 : 이 장로님께서 분규 마무리하는데 주역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마무리한 감회가 궁금합니다.
이 : 제가 안수집사일 때 분규가 시작됐습니다. 그때 저는 고등부 교사를 맡고 있었는데, 함께 교사로 동역하는 분들과 학생들도 함께 원로 목사님을 지켰습니다. 당시 목사님 지키고 화평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명 날인을 저희가 시작하고, 교인들도 함께 동참했지요. 안수집사들이 주축이 되어 교인들에게 이해를 구해 분규 과정을 겪어나갔습니다. 사람은 모두 허물이 있습니다. 반대쪽이든, 우리든 절대적인 건 없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자세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서로 극단적인 입장을 취할 때가 많지만, 저는 유대를 이루려고 애썼습니다.
신 : 유대관계를 가지는데 이 장로님의 노력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화해가 조성된 게 아닌가요.
이 : 우리교회 입장도 살리고, 그쪽도 안아야 화해가 됩니다. 화해과정이 힘들긴 했습니다.
신 : 용서는 하더라도, 과거는 기억할 필요가 있지요.
이 : 그렇습니다. 분규를 거친 교회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 : 사회적 선교 마인드를 가지는데 주목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이 : 저는 어느 단체나 꼭 참석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영락복지재단 상임이사, 총회부산신학교 부이사장, CBS기독교부산방송국운영이사회 부회장, 한국기독신문 부이사장, 부산지방경찰청교경협의회 부회장, 범무부 범죄예방 부산협의회 위원,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부산시운영위원회 위원, 부산시서구청사랑의띠잇기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위상은 우리가 스스로 세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교회의 위상에 맞게 사회봉사도 해야 합니다. 모든 교회의 직분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세우는 것이지, 그 사람의 권위를 위해서 세워서는 안 됩니다.
신 : 그렇게 많이 맡으면 경제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도 많을 텐데요.
이 : 저는 지금도 차를 안타고 다닙니다. 예전에 차를 타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서, 전철을 타고 다닙니다. 아들도 차가 없습니다. 그렇게 아낀 돈을 구제하는 데 씁니다. 가난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신 : 끝으로 목사님께서 그동안 부산영락교회를 어떻게 끌어나갈 수 있었다고 보는지 이야기해주십시오.
이 : 정말 영성이 대단합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교단 총회장도 마다하도, 부기총 대표회장도 마다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담임목사님 앞에 서면 말을 더듬을 만큼,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신 : 목사님께서도 이 장로님 아니었으면 못 했을 거라 말씀하신 것처럼, 두 분 관계가 참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도 두 분처럼 좋은 관계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나타나길 기대해봅니다.

정리 / 최찬미 기자

201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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