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사 ‘우리 찬송가’를 갖게된 공로 인정 받아
- 찬송가공회 상대 민·형사 건 모두 취하 및 무혐의 받아
- 복음성가, 성가곡 만들어 한국교회 최초로 보급할 계획
>>김상권 장로 주요 약력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남부산교회 시무장로
·전국장로회 연합회(합동) 회장
·한국장로총연합회 공동회장
·부산장로총연합회 초대회장
·부산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
·부산기독실업인총연합회 초대회장
김상권 장로(남부산교회)는 1940년 빈농의 불교가정에서 8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나 6살에 친구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대구에서 고학으로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동아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벽산그룹에 입사해 영업부장을 끝으로 사업에 투신해 성공한 예수쟁이 사업가이다. 지난 4월 20일(화) 부산 광장호텔에서 김상권 장로를 만났다.
신이건 장로: 장로님은 부산기독청장년연합회 회장, 영남장로협의회 회장, 부울경남전도회연합회 회장, 부산기독교협의회 공동회장,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초대회장, 전국장로연합회 회장, 한국평신도연합회 회장, 한국장로총연합회 회장, 한국청소년 부산연맹 이사장 등을 역임하시면서 한국 기독교 평신도운동을 주도해 오셨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김상권 장로: 뭐 요즘에도 말씀하신 위의 기관 등에서 전 회장으로서 참여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한국찬송가공회 총무로서 21세기찬송가 개발과 한국찬송가공회 법인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였으며, 이제 이런 일들을 마무리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는 편입니다.
신이건 장로: 그렇군요. 먼저 한국찬송가공회 명예총무로 추대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상권 장로: 정말로 감개무량합니다. 저는 매우 부족하지만 한국찬송가공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찬송가공회 역사상 처음으로 명예총무에 추대되었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이건 장로: 찬송가 공회 총무로 취임한지가 언제이며 몇 년간 재임하셨는지, 그리고 활동하신 업적을 몇 가지 말씀해 주시지요.
김상권 장로: 1996년 3월에 취임하였고 2009년 5월 현직에서 물러났으니 14년간 재임하였군요. 뭐 업적이라 할 것은 없지만 그동안 해 온 활동들을 정리해보면 첫째는 재정적인 기반을 튼튼히 하였습니다. 제가 총무로 취임한 첫해 예산이 2억수천만원이었는데 결산을 8억수천만원 하였습니다. 둘째는 21세기찬송가의 성공적인 발간으로 한국교회도 우리 찬송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인도, 필리핀도 찬송가를 갖고 있는데 선교 강국이라는 한국교회에 우리의 찬송가가 적고 대부분 외국 찬송가라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셋째는 재단법인화를 이룩함으로써 공회의 존재 안정성과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고 할까요?
신이건 장로: 찬송가공회의 재단법인화를 마친 후 본지 한국기독신문은 ‘찬송가공회 이제 한국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다’는 톱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법인화를 대체적으로 지지 환영하지만 반대한 개인과 단체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상권 장로: 찬송가공회 총무로 재직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손해 본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찬송가는 성경과 더불어 예배와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기에 찬송가는 하나님의 것이요, 한국교회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수의 개인이나 단체 등은 자신들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찬송가공회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을 두려워하여 반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좀 흐르면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신이건 장로: 장로님은 평신도 운동뿐만 아니라 선교와 전도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남미, 탄자니아, 아프리카, 인도, 베트남 등에 교회를 건축하고 북한에도 합동교단의 대북사업의 상징인 평양 봉수빵공장 건립기금 전액을 헌금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고향교회를 건축하다가 부친께서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일화도 있는데요.
김상권 장로: 부끄럽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좀 나태해진 것 같아 하나님께 죄송합니다. 해외에는 11개 교회를 개척, 건축하였는데 대부분 그 지역에서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되었고 교회도 부흥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은퇴한 후에는 선교지를 돌아보며 여생을 보낼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고향교회를 건축하면서 모든 자재를 부산과 대구에서 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께서 ‘아들이 갖다 둔 건축자재를 지켜야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매일 아침 일찍부터 교회 건축현장에 나가셨습니다. 하루 종일 감독하시듯 교회 건축 현장을 지키시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 큰 것으로 갚아주시는 전능자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감격했었습니다.
신이건 장로: 교단(합동)이나 신학교, 기독언론 등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봉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상권 장로: 수십년간 총회 총대로 나가면서 유지재단이사, 미주총신이사, 총회감사부장, 순교자사업부장, 장로신문사 부이사장, 기독신문사 부이사장, 기독신문 사장(대행) 등을 역임했고 우리 신문(한국기독신문) 운영이사장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안합니다.
신이건 장로: 김 장로님께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맡겨진 모든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 오셨습니다. 그렇게 각 분야에 봉사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습니까?
김상권 장로: 가장 감격적인 사건은 고향교회를 건축하다가 육신의 아버지인 저희 부친께서 주님을 영접한 사건입니다. 이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제 부친께서 그렇게 예수님을 믿게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항상 제 생각보다 크시고 감동적이며 놀랍습니다.
그리고 남미 파라과이에 고등학교를 건축하러 갔다가 비자를 못 받아 아르헨티나에서 몰래 국경을 넘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밤새도록 달려가 동이 틀 때 목적지에 도착하여 눈물과 기쁨으로 선교사를 만났던 일, 평양 봉수빵공장 정문에 조선기독교연맹 이사장 강양섭 목사님과 현판식을 했던 일, 부산장로총연합회를 창립한 일, 부산기독교총연합회 초대회장으로 회관(사무실)을 구입함으로써 부산기독실업인회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일, 아프리카 식당에서 생전 처음 보는 선교사 가족을 만나 식사대접하면서 5살 된 선교사님의 아들이 미친 듯이 질긴 갈비를 먹는 것을 보고 일행이 지갑을 털어 선교비로 전달했던 일, 노숙자들로부터 종이학 수천 개로 장식된 종이 꽃다발을 받았던 일. 가끔 이런 일들이 떠오를 때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을 때가 있습니다.
신이건 장로: 노숙자라고 말하니 생각이 나는군요. 장로님 회갑연을 부산역을 중심한 노숙자 600여명에게 이틀에 걸쳐 만찬을 대접하고 대형TV와 냉장고를 불우단체에 선물하는 것으로 회갑연을 대신하신 기억이 납니다. 칠순잔치는 했습니까?
김상권 장로: 만으로 하면 금년인데 안하려니 가족들이 야단이라 고민 중에 있습니다. 뭐 좋은 일 할 것 있습니까? 있으시면 좀 가르쳐주세요. 다 하나님이 주셨는데 마지막을 잘 준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신이건 장로: 선교대상 등 큰 상도 받은 것으로 압니다.
김상권 장로: 한국기독교선교대상 심의위원회와 (사)한국복음화중앙협의회가 공동으로 수여하는 평신도 선교대상을 받았는데 지방 신자로는 제가 처음이라 하더군요. 한국청소년대상 등 분에 넘치는 상들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신이건 장로: 현재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춘 상태입니다. 이를 두고 한국교계 지도자들이나 교단 또는 단체들이 고심하고 있는데 교계의 원로로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김상권 장로: 제가 많이 알지 못하지만 그저 오래 살아온 선배로서 한마디 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거룩성을 다 팽개치고 감상에 호소하므로 얻는 결과는 잠시 잠간뿐이요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전 어떤 연합집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요즘 교회가 X판이라고 하시더군요. 좀 지나친 표현이지만 귀담아 들어야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교회에 대한 절대성과 거룩성을 지키면서 물질이나 정성을 불신자들과 나누는 것이 한국교회가 지향해야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상권 장로는 부산여전도회 회장을 역임한 송영옥 권사와 함께 슬하에 혜영(재미), 성환 남매가 있으며, 다복한 가정으로 소문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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