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중심에서 화합을 외친 장차남 목사

성역 50년, 목사 42년, 온천제일교회 32년의 은혜로운 시간 마감, 5월 은퇴

부산을 대표하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목회자로 손꼽히는 장차남 목사. 한국교계에서 가장 교세가 큰 예장합동 제91대 총회장으로 섬긴 장차남 목사는 후배 목회자들로부터 진심어린 존경을 받는 목회자다. 한 평생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이제 5월 은퇴를 앞둔 장차남 목사를 지난 3월 24일 교회목양실에서 만났다.

역사와 함께 보낸 세월

장차남 목사를 만난 사람들은 흔히들 ‘할 말이 많은 목회자’라고 표현한다. 장 목사는 사회, 정치, 문화 전반에 걸쳐 지식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한국교회 역사의 중심에 늘 서 있었기 때문에 해주고픈 말들이 많다. 보다 나은 앞날을 위해 후배들에게, 성도들에게 과거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이야기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장차남 목사의 모교회는 1900년에 설립된 경북 상주교회(당시 상주읍교회)다. 신흥교회가 아닌 유서 깊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장 목사에게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의 삶이다. 상주교회는 현재 통합교단이지만 장 목사가 출석할 당시, 장로교단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 총회가 갈라지면서 신학교 진학에 고민하던 찰나, 장 목사를 아끼던 목사의 권유로 총신대에 진학했다. 서울에서 학업생활을 하며 창신교회에 출석했다.
당시 창신교회 권연호 목사(예장 제36대 총회장) 밑에서 배우다가 1966년 12월 말경 대구 성덕교회로 부임했다. 강도사로 대구에 내려왔으나 곧 안수를 받고 부목사 사역을 했다. 1967년 3월부터는 대구신학교에 강의도 나가며 젊은 나이에 다양한 사역을 하다 1968년 7월, 그의 나이 29세 때 부산중앙교회에서 부교역자 사역을 했다.
당시 담임이던 노진현 목사(예장 제43대 총회장)로부터 목회에 대한 가르침은 물론 노 목사의 권유로 당회에 참석하며 교회 행정에 대해서도 배워갔다. 장차남 목사가 33세 되던 해, 노진현 목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후임목사에 장 목사를 추천했으나 당회의 의견충돌로 무산됐고 곧 노진현 목사가 쾌유하며 후임 문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장 목사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교회를 섬겼으며 장 목사가 나오기 전, 마지막 2년 동안은 노 목사와 함께 교대로 주일설교를 했다. 1974년 12월 새로운 임지가 정해지지 않았으나 새 출발을 결심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당회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장 목사는 부산중앙교회를 나섰다.
장차남 목사는 석 달 안에 초청이 없으면 서울에 가서 개척을 할 생각으로 기도 중이었는데 부산중앙교회를 사임하고 5주만에 해운대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와 해운대교회를 섬겼다. 해운대교회는 1937년 설립돼 이곳에서 열린 경남노회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결의한 뜻 깊은 곳이다.
장차남 목사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아래 한국교회 역사와 함께 자라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예장 총회장을 지낸 목회자들에게 직접 배우면서 하나님께서 하나씩 준비시켜 나간 것이다.

가화만사성

1977년 5월 온천제일교회에 부임, 그 해 9월 제8대 담임목사로 위임식을 가졌다. 38세 젊은 나이에 담임목사가 된 장차남 목사는 온천제일교회에 그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 장 목사 부임 이후 대지와 지상건물을 해마다 조금씩 매입하며 교회의 양적, 질적성장을 추구했다.
온천제일교회는 인근에 부산대학교가 위치해 있어 교수, 학생들의 출석이 높다. 특히 교수들의 출석이 높은 것을 보고 부산지역 교계지도자들은 장차남 목사의 학구적인 설교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장차남 목사는 “설교는 내용과 표현으로 이뤄진다. 교수들은 내용에, 부흥사들은 표현에 치우치기 쉽지만 양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내용과 표현,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내용’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책임감 있는 설교’를 위해 지금도 꼭 원고를 작성하는 장 목사의 설교는 이미 총회장 시절 전국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온천제일교회는 교회의 규모에 비해 큰 다툼없이 화목하게 당회가 운영되고 있다. 젊은 목사들은 당회를 꺼려하는 경우가 있으나 장 목사는 부임 전 사역했던 부산중앙교회 당회를 참석한 적이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다. 장차남 목사는 부산은 물론 전국을 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나 50년 목회 중 당회원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정면으로 비난을 받아 본 적이 없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긋남 없이 당회를 운영한 비법을 묻자 장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다. 사람들을 대할 때 예절로 대하기 때문”이라며 “교회는 특히 인간관계가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옛말처럼 가정인 교회를 내실 있게 꾸려나가자 성도들과 당회에서 앞장서 총회 출마를 권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장차남 목사가 총회에 출마하게 됐다. 장 목사는 과거에 있었던 선거 이야기를 들으며 가관이라 생각하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결국 첫 출마에서는 낙선했으나 2006년 제91회 총회에서는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연합, 일치에 앞장

장차남 목사는 총회장으로 섬기는 1년 동안 많은 것을 시도했다. 특히 2007년은 평양대부흥100주년을 맞아 한국교계가 손을 잡는 시기였고 그 중심에는 장 목사가 있었다.
장차남 목사는 2007년 7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기념예배 상임대회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또한 한국교회의 연합에 기여하면서 교단 안팎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당시 예장통합 총회장이던 이광선 목사와 서울, 부산을 오가며 강단 교류를 가진 바 있다. 또한 당시 예장고신 총회장이던 권오정 목사와도 대구, 부산을 오가며 강단 교유를 가졌다. 당시 한국교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으며 장차남 목사의 연합운동에 칭찬이 자자했다. 뿐만이 아니라 사학법재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경실련 공동대표로 5년간 섬기면서 NGO활동에도 앞장섰다.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 분열을 지켜 본 장차남 목사는 누구보다 ‘연합’, ‘일치’를 외쳤다. 과거 역사를 알기 때문에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아는 것이다. 한국교계를 대표하는 ‘어른’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장차남 목사는 지난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대표회장 후보로 추천됐다. 그러나 장 목사는 최병남 총회장에게 사퇴서를 보내고 “내부 조정이나 경선이 후보의 이미지에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되어 후보를 사퇴한다”고 뜻을 밝혔다. 장 목사의 사퇴로 교단 안팎에서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컸다.

올해 결혼 40주년을 맞은 장차남 목사 부부는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성역 50년, 온천제일교회에서 시무한지 32년이 된 올해 5월, 은퇴를 앞둔 장차남 목사는 후배목사들에게 “교회와 정치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전혀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으나 자칫 잘못하면 서로에게 위험이 될 수 있다. 가능한 서로 보호하고 보완해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교회는 기도하며 말해야 할 것을 말할 수 있는 선지자적 메시지를 가져야 한다. 나라가 잘 되고 정부가 잘 되도록 기도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 후 활동을 계획을 묻자 장 목사는 “그동안 써 온 설교 원고들과 각종 자료들을 종합, 정리할 생각”이라며 “적당한 시기에 나의 관심분야와 나의 신앙 살멩 대하여 글을 써 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또한 각종 집회, 대외활동은 선별해 꼭 필요할 때만 참석할 생각이며 “나의 소망은 목회자 사랑방을 운영하는 것이다. 장서를 개방하고 초교파 선후배 목사들이 드나들며 독서회, 세미나, 상담, 휴식,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장 목사는 은퇴 후 거주지가 확정되지 않아 향후 거주지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곧 은퇴를 앞둔 노년의 목사이지만 아직도 끊임없이 꿈을 꾸고, 꿈을 실현시키는 생명력 있는 목회자다.

오혜진 기자

200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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